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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2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전쟁_ 625․ 163 육체적 정신적 고통뿐 아니라 연좌제로 인한 유족들의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머. 니 김증산이 년 나산면 우치리 사건에서 세에 중대 군인에 의하여 사살되었음에도 불1951 59 5 구하고 신원조회서에 년 월 일 여자유격대원으로 아군과 전투 중 사살된 자로 잘‘1951 1 14 ’ 못 기록되어 신청인 이계준 자신과 아들의 취업에 필요한 신원조회가 문제되었다 이외에도 가. 족의 사망사실이 잘못 기록되어 취업에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외에도 많은 성폭력의 피해자들은 그 사실을 누구에게 말하지도 못한 채 평생을 고통 속에 서 살았음이 분명하다. 결론 및 권고 사항8) 결론(1) 가 노방주 외 명은 한국전쟁 시기인 년 월 일경부터 년 월 일까. 248 1950 11 20 1951 2 20 지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 해보 나산면과 당시 광산군 본량면 덕림리 장성군 삼서면 수해리, , , 및 인근에서 육군 사단 연대 대대 중대 군인들에게 집단총살되었으며 정남숙 외 명은11 20 2 5 8 현장에서 살아남았으나 심한 부상을 당했다. 나 조사 결과 밝혀진 본 사건의 주요 경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 중대는 년 월 일 정오 무렵 광산군 본량면 덕림리 주막에 모여 있던 주민을 함평5 1950 11 27 군 월야면 외치리 외치재로 연행하여 살해하였다 년 월 일 새벽에 함평군 월야면 정. 1950 12 6 산리 장교마을과 동촌마을에서 장성군 삼서면 수해리에서 주민을 집단 총살하였으며 서촌마을, , 에서는 일 오전 군인들이 들판을 가로질러 오다가 주민을 총살하였다 다음날인 월 일에는6 . 12 7 이른 아침부터 월야면 월야월악리에서 중대장 권준옥의 직접 지휘 하에 주민을 집단 총살하였5․ 다 또 월 일 오전 나산면 이문리 주민을 인근 나산천변에서 같은 날 오후에는 월야면 외. 12 9 , 치리 주민을 해보면 금덕리 두루샘으로 연행하여 살해하였다 월 일 해보면 대창리 성대마. 12 31 을 원주민과 불갑산 용천사 아래 광암리에서 소개되어 왔던 주민을 상곡리 쌍구룡에 불러내어 집단으로 총살하여 방죽에 던져 넣었다 다음해인 년 월 일 오전에는 해보면 상곡리. 1951 1 12 모평마을 원주민과 용천사 옆 산내리에서 소개나왔던 주민을 쌍구룡 앞으로 나오라 하여 나오 는 대로 총살하였다 월 일 해보면 상곡리 모평마을과 나산면 계동 마을을 지나온 군인들은. 1 14 우치리에서 주민을 집단학살하였다 이외에도 중대가 해보면 금덕리 문장장터에 주둔 시기에. 5 인근 지역에서 주민을 총살하였음이 밝혀졌다. 다 희생자는 전라남도 함평군과 광산군 장성군 거주민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 . 사하고 있었고 연령별로 보면 세 이하가 명으로 세 이상이 명으로 였20 93 37.3%, 61 11 4.4% 다 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호적 미등재자도 명이었다. 16 . 라 조사결과 희생자들은 모두 비무장 민간인이었음이 밝혀졌다 당시 육군 사단 연대. . 11 20 대대 중대는 불갑산 인근에 자리 잡은 이들 지역에서 장교 동촌 서촌마을 사건은 국군과 빨2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