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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2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전쟁_ 625․ 155 었다 중대장의 평소 부하나 주민들에 대한 난폭한 행동도 주요한 이유가 되지만 빨치산과. 5 , 비교해서 전투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나이 어린 군인들의 빨치산에 대한 공포감과 보복심도 화 풀이식 무차별적인 주민희생을 야기한 중요한 이유가 된다. 나 소결. 년 월 말 이후 함평군 해보면 월야면에 주둔하면서 토벌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민1950 10 , 간인들을 집단 총살한 가해부대는 육군 사단 연대 대대 중대로 확인되었다11 20 2 5 . 중대의 함평군 해보면 금덕리 문장 장터 주둔 사실은 당시 중대장 연락병의 진술 사건 당5 5 , 시 현장을 목격하였던 윤인식 이계필 그리고 생존해 있는 오정인 등의 진술에서 확인되었다, , . 또 가해부대의 직접 책임자인 중대장은 권준옥 대위로 확인되었다5 . 함평군 월야 해보 나산면 지역의 집단희생사건은 육군 사단의 빨치산 토벌작전 과정에서, , 11 발생하였다 중대는 한새들 전투에서와 같이 사건 발생지역인 불갑산 인근지대 주민들이 빨치. 5 산에 내통 또는 협력하고 있다는 의심아래 극히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어떠한 적법 절차도 거치 지 않고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집단 총살하였음이 분명하다. 가해 측의 지휘명령체계와 적법성 여부6) ․ 가해 측의 지휘명령체계(1) ․ 가 조사내용. 년 국회 조사당시 현장 생존자 정일웅은 그 사람 중대장 이 와가지고 말한 것은 하1960 “ (5 ) 루에 공비 몇 명과 무기 얼마를 사살하고 압수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 라고 증언한 바” 있다. 120) 이는 중대의 민간인 사살이 상부의 공비사살 지시에 의한 것임을 말해준다 즉5 ‘ ’ . 본 사건의 가해부대인 중대 중대장 권준옥이 함평지역 민간인 집단총살 사건을 직접 명령한5 장본인인 것은 틀림없지만 하루에 일정한 수의 공비를 사살하라고 명령한 것은 상급부대였다, 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월야지서 토벌대장으로서 사건 직전 군경작전 회의 현장에 참석했던. 오정인 중대장 연락병으로서 명령 내용을 알고 있었던 김일호 당시 군의 작전과 상부 보고, 5 ,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청방 경력의 김석주의 다음 진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건 전에 작전회의에는 번 정도 참석하였으며 한번은 월야와 삼서면 경계지역에 작3 전회의에 참석했는데 대대에서 내려온 공문을 보고 중대장이 공산주의자라고 인정하고 부 역을 한 사람은 무조건 명씩 죽이라고 했는데 결국은 덮어놓고 죽이라는 얘기였습니50 다. 121) 120) 정일웅 증언 제 대 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속기록 쪽, 4 16 , 1960. 6. 9.「 」 121) 참고인 오정인 진술조서 쪽, 5 , 2006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