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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2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전쟁_ 625․ 153 활하다 보니 틈만 나면 민가에 나가 주민들에게 행패를 부렸다는 증언도 있다. 중대의 규율은 중대와 대비된다 중대는 같은 대대의 중대였지만 학교 안 고창중학교 에5 6 . 6 ( ) 주둔하다 보니 병력이 통제되고 규율이 엄격하게 유지되었지만 108) 중대는 소대별 천막생활을5 하여 규율이 존재하지 않았다. 중대가 작전지역에서 민간인 집단총살사건을 빈번하게 야기한데는 중대장 권준옥의 개인적5 5 인 성격과 품성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중대장 권준옥과 일부 병사의 부녀자에 대한 성폭행은. 주민의 원성을 샀다 남산뫼 사건에서 젊은 여자를 연행하려 하자 그 아버지까지 총살하였고. , 당일 남산뫼 현장에 가면서 월야면 용두리에서 결혼을 앞둔 처녀를 성폭행 후 총살하기도 하였 다. 109) 참고인 이녹범에 의하면 권준옥 중대장의 만행에 대해 해보지서장이 연대장 박기병 대령에게 진정하여 연대장이 해보 중대본부를 불시에 방문하였는데 그는 중대막사에서 젊은 여자와 함, 께 있다 발각되어 입창조처를 받기도 하였다. 110) 중대 화기소대원에 의한 여성 희생사건에 대5 한 진실규명 신청이 있었기 때문에 위원회는 그 사건을 조사하였다. 111) 또 해보면 문장에서 식 당을 경영하던 어느 주민은 중대의 요구에 의하여 특정 주민이 매일 여성을 조달하는 역할을5 하였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112) 권준옥 중대장과 중대원의 이러한 행태는 지역주민에게 조롱거리가 되었고5 113) 한편으로는 집단희생 사건 발생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입증자료가 된다. 114) 한편 사건지역의 경찰 청년방위대원 학도연맹원 구국연맹원 등도 군의 작전에 동원되었, , , 다 청년방위대원의 경우 남산뫼 사건 쌍구룡 사건 발생 시에는 마을에 들어가 중대의 명령. , 5 으로 주민을 끌어냈으며 군인들이 주민을 총살할 때는 주민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 여 마을입구에서 망을 보았다는 진술이 있다. 115) 또 학도연맹원의 일부는 주민들 사이에서 공비색출을 명분으로 마을에서 사적인 폭력을 행사 하기도 하였다. 116) 구국연맹원 또한 군인들이 요구하는 각종 물품을 조달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주민들을 괴롭히는 등 비록 소극적이지만 가해 행동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중대원 중 명령을 피해 주민을 살려준 경우도 있는데 남산뫼 사건 당시 중대장 연5 5 락병 김일호가 정일웅을 살려주기도 하였고 어느 군인이 주민들을 나오라고 독려하는 이장에, 게 만류하였는가 하면 쌍구룡에서는 앞장서 나오는 주민에게 여기 있으면 죽으니까 빨리 도망, 가라고 일러주기도 하였다 또 나산면 우치리에서는 군인이 제사를 지내는 집에 와 여기 있. “ 으면 다 죽으니까 빨리 도망가라 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집단총살을 피할 수 있었다” . 117) 이는 108) 참고인 윤석근 녹취록 쪽, 6 , 2006. 12. 13. 109) 참고인 김석주 진술조서 쪽, 8 , 2006. 6. 29. 110) 참고인 이녹범 진술조서 쪽, 5 , 2006. 12. 13. 111) 신청인 김홍빈노병철의 진술조서, 2007. 1. 18.․ 112) 정찬동 함평양민학살 시와 사람 쪽, , 1999, 75~84 .『 』 113) 신청인 양윤식 진술조서 쪽, 4 , 2007. 3. 15. 114) 참고인 박병인 진술조서 쪽, 3842 , 2007. 2. 14.․ 115) 참고인 김석주 진술조서 쪽, 4 , 2006. 6. 29. 116) 참고인 윤홍병 진술조서 쪽, 7 , 2006. 6. 8. 117) 신청인 김재경 진술조서 쪽, 5 , 2006.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