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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가 조사내용. 신청인과 참고인의 진술을 종합해보면 육군 사단 연대 대대 중대가 년 월11 20 2 5 1950 11 20 일경부터 월 일까지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 해보 나산면과 광산군 본량면 장성군 삼서면1 14 , , ,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 중 총살 타살 등의 방법으로 많은 민간인을 집단 살해한 것으로 확인, 되었다. 나 소결. 함평 사단사건은 육군 사단 연대 대대 중대가 공비토벌 작전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민11 11 20 2 5 들이 빨치산으로 활동하였거나 빨치산에 협력하였다고 의심하여 집단 또는 소규모로 총살살해․ 한 사건이다. 년 월 일 덕림리 사건은 주민들이 신고 없이 주막에 모여 새끼 꼬는 것을 중대1950 11 27 5 군인들이 수상히 여겨 살해하였다고 주장한다. 월 일 월야면 정산리 장교 동촌마을 사건과 월 일의 남산뫼 사건은 한새들 전투와12 6 , 12 7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월 일의 한새들 전투 일 후 동촌마을 뒤쪽에서 일부 주민들. 12 2 3 이 징과 꽹과리를 치며 승리를 자축한데 대한 보복으로 추정된다‘ ’ . 64) 또 수해리 사건은 태 청산에 있던 빨치산이 마을에 내려와 식량을 조달해가자 주민들이 이들에게 협조하였다고 의심 하여 총살한 것으로 보인다. 일 저녁 월야리와 월악리 주민들과 소년단원들은 좌익들의 강요로 손동재에서 봉홧불을 피6 우며 만세를 부른 것이 다음날 중대가 남산뫼에서 벌인 집단총살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5 것으로 추정된다 년 월 일의 쌍구룡 사건과 년 월 일 모평 사건 그리고. 1950 12 31 1951 1 12 년 월 일 우치리 사건은 소개 나온 주민들이 식량 등을 가져오기 위하여 마을을 왕래1950 1 14 하자 중대가 이들을 빨치산 내통자로 의심한 나머지 군경 가족을 제외한 모든 주민을 선별없5 ․ 이 총살한 사건이다. 그리고 모평마을 사건은 전날 밤 비녀봉에서의 중대본부 공격과도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또 월 일 외치리 사건은 빨치산의 중대에 대한 도로교란작전이 주민총살의 빌미가 되었12 9 5 을 것으로 보이며 같은 날 나산면 이문리 사건은 좌익부역혐의자 색출과정에서 집단 총살되, ․ 었을 가능성이 크다 월 일 나산면 우치리 사건은 공비소탕작전 진격과정에서 벌어졌고 중. 1 14 5 대 진격소식이 전해오자 젊은이들이 마을에서 모습을 감추어 희생자가 대부분 노약자들이었다. 희생자의 신원과 희생규모(2) 가 사건별 희생자의 희생규모. 65) 64) 그 전날 군인 명이 신기마을에서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빨치산들이 봉화를 올리고 그러니까 그랬던 것 같습“ 2 . 니다 또 제가 듣기로 장교마을에 안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여자와 아이들까지 죽었다고 들었습니. ○○ 다 신청인 서백수 진술조서 어머니와 이모가 밥을 하는데 중대 군인들이 마을을 포위하고 큰소”( , 2006. 7. 25.). ; “ 5 리로 대한민국 군인이 들어왔다 모두 밖으로 나와라 해서 나갔습니다 군인들이 연설하는 줄 알고 작은 이모는 아“ . ” . 기를 업고 맨 앞에 어머니는 아기를 업고 이모뒤에 앉았습니다 신청인 한정옥 진술조서, “( , 2006.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