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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8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현재는 안채와 헛간채 목조 칸( 5 . 스레트지붕 로만 구성되어 있으나) 전에는 사랑채 칸 해방 직후 훼(3 . 철 중문까지 갖추었던 큰 가옥이었), 다. 안채는 정면 칸의 비교적 큰 규5 모의 가옥이다 전면 퇴주와 주심도. 리는 각각 두리기둥과 굴도리 장혀( 받침 를 썼고 나머지 부재도 비교적) 굵직하다. 실의 구성은 왼쪽으로부터 정지, 안방 광 그리고 맨 끝으로는 앞쪽으로 높이 정도의 누 마루를 설치하고 그 뒤쪽, , 40 ( )樓㎝ 으로는 웃방을 설치하였다 정지 전면 모퉁이에도 작은 방을 하나 더 드렸다 누마루에는. . 창호를 설치하고 계자난간을 돌렸다 누마루 위쪽에는 옛 사랑채에서 옮겨온 양심재. “ (養心 라는 현판과 양심재기 가 나란히 걸려 있다)” “ ( )” .齋 養心齋記 년 전에 정지만 입식부엌으로 개조하였고 나머지는 건축 당시의 원모습 그대로다6 . 정단예 가옥22. 소재지 나산면 송암리 구 송암 마1 <∶ 을> 송암 마을 어귀의 평탄한 지형에 축좌 미향 으로 자리하고 있다( ) .丑坐未向 정단예 세 홀로 기거하고 있는 이 집(75 ) 은 몇 대조까지 인지는 모르나 김씨 대대로 이 가옥에서 살았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필자는 세기 초쯤에 건축한 것으로 본다19 . 년대 초에 문간채와 방앗간채가 훼철되고 현재는 안채만 남아 있다1960 . 안채는 년 전에 시멘트 기와로 지붕개량을 하였고 전후와 좌측으로 퇴간을 둔 자17 “ ㅡ 형 칸 집이다” 3 . 칸 규모에 측면까지 퇴간을 둔 사실이 주목된다 필자의 추정으로는 본래 퇴간 대신3 . 광 옆으로 방이 하나 더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실의 배치는 오른쪽으로부터 정지 안방 광 순으로 되어 있고 다른 가옥들과 마찬가, , 지로 전퇴에는 툇마루가 놓여 있다. 가구는 고주 량가며 기둥은 다른 가옥과 달리 직경 의 굵직한 두리기둥을 섰다 전면2 5 21 .㎝ 주심도리 역시 직경 의 굴도리로 되어 있어 주목이 간다13 .㎝ 안방 출입문 옆으로는 비교적 큰 띠살 봉창 이 설치되어 있다(45×75 ) .㎝ 남상복가옥 안채 평면도 정단예가옥 안채 평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