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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사정에 의한 자료미비 등으로 자세한 프로필은 싣지 못한다. 제 절 함평의 예술제 현황3 예총 함평지부 와 함평예술제1. ( )藝總咸平支部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년대 말엽에 문림회가 활발히 활동을 하자 함평의 예술 활1950 동을 총망라하는 모임체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돌았고 이 의견은 문림회가 주축이 되 어 년 예총 함평지부를 결성했다1961 . 처음에는 아무래도 바로 중앙에서 지부 인준을 받기가 어려우므로 예총 목포지부의 후원을 받아 지회의 성격을 띠고 활동에 들어갔다 문학분과는 문림회원의 증원으로 결성되고 음악분. 과는 조용성 주일석 황근안 미술분과는 주은기 신정문 강성식 무용분과는 김옥경 연극분과, , , , , , , 는 나광채 김영훈이 중심이 되어 결성을 보았다, . 개 분과의 총회원은 명이었고 발족 첫 사업으로 년 월 일부터 일까지 제5 78 1962 4 19 21 회 함평군 예술제를 함평공원에서 개최하였다1 . 지부장은 당시 함평문화원장 이택헌 부지부장은 김신철 간사장은 리현석이 맡았고( ), ,李宅憲 경비는 회원 각자의 추렴 찬조금으로 충당하였는데 제 회 예술제의 경비는 만원이었다 행, 1 48 . 사 내용을 보면 초 중고등학교 학생 백일장 독무 군무 독창 합창 기악 군내 초 중 고등, , , , , , , , , 학생 그리기 대회 연극 경연 일반인들의 가요 경연 등이었다, , . 단체 우승상에는 문공부장관상이 주어졌고 준우승상에는 한국문화원 연합회장상이 수여 되어 중앙에서도 관심 깊게 함평예술제를 지원 했었다. 제 회 종합우승상은 함평초등학교가 차지했었다 제 회 함평군 예술제는 제 회 대회보다1 . 2 1 참가자가 많았고 장소도 함평극장에서 치러 조명등의 효과를 충분히 살려 다채로운 행사가 되었다. 그리고 문학 분과와 미술 분과가 협력한 회원 시화전 이 주목을 끌었다 예총 목( ) .詩畵展 포지부의 지원 또한 컸었다. 종합우승은 회 대회와 같이 함평초등학교가 차지했다1 . 아쉬운 것은 예총 함평지부의 활동이 제 회 대회 이후 다시 활동을 못한 것이다 주축을2 . 이루던 회원들의 타지 전출 과다한 경비 등이 맥 끊게한 원인이었다, . 당시 전국에서 예술제가 열린 곳은 목포 밀양 등 몇 곳에 지나지 않았고 중앙의 지원도, 크게 없었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 회원의 열의만으로 제 회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것만. 2 도 보람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이 예술제 개최로 인해 당시 함평군이 전국에서 공보 지. A 구에 뽑혔었다. 위에서처럼 1 년대 초에 발족했던 함평의 예총 대한민국예술인총연합회 지부는 문960 ( ) 《 림 회원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조직의 활동상이 점차 미약해졌다 년대 초엽에 관내. 1970》 중고교 교사 중심으로 결성되어 한동안 활발하게 행해지던 미술협회의 활동마저 년대1980 에 들어 중단된 형편이다 다만 그 기능 일부는 함평문화원이 일부 대행하고 있는 실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