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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16 함평의 문학과 예술_ 1193 김교선 작가( )金敎善∙ 년 엄다면 삼정리 태생으로 광주서중을 거쳐 학다리 고교를 나왔다 광주에서 여러 사1938 . 업에 종사하며 사진예술에 임하였다 년 가을에는 광주 남도예술회관에서 개인전을 열기. 1992 도 했다 그는 흔히 산수의 정취 등에 걸친 대자연을 사진의 대상으로 삼았다 함평문화 등. .《 》 에도 자주 정선한 작품을 선보이곤 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이던 그는 년에 작고했. 2008 다. ∙김용기 작가( )金龍基 년 학교면 학교리 출신으로 학다리 중고교를 졸업했다 오래 전부터 광주에서 생활해1941 . 온 그는 향상된 풍경화의 이미지 사진 예술을 익히면서 창작에 열중하고 있다 년대 광주. 1990 사진대전에 특선 회를 지내고 년에 사진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광주 사진2 2000 . 협회 대의원으로서 협회의 간사 일을 맡아오고 있다. 이 밖에 학교면 금송리 출신으로서 광주광역시 전람회 초대작가인 김기호 작가도 있다. 광주에서 영상사진 동아리를 지도하는 그는 김기호 스튜디오도 운영하며 사진예술의 디지 털 이미지를 추구한다. 음악계2) 국악인(1) 함평의 예술이나 연예를 말할 때는 역사적인 판소리의 창 을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 .唱 판소리가 이미 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서만이 아니다 사2003 . 실 함평천지는 서편제 의 거목들이 태어나 자랐던 본고장인 것이다 국악전공의, ( ) .西便制 김혜정 박사도 함평이 남도 판소리의 중심 지역이었음을 밝혀놓고 있다 함평은 정창업. -“ , 정학진 강장원 임유앵 등의 명창이 출생한 지역이다 전형적인 서편제 지역으로 볼 수, , . 있으나 강장원이나 임유앵처럼 김창완의 서편제와 이동백의 동편제가 섞인 경우도 있다. ” 물론 이 가운데 정창업이나 강장원은 잘 알려져 있으나 정학진 명창 은 아직(1853~1912) 자료가 미비하여 아쉬움이 남지만 그 인재적 가치나 예술적 열정은 무진장인 것 같다. 함평고을의 이런 국악에 대한 사랑의 맥은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어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라 생각된다 고전적인 국악이 가뜩이나 사양 추세인 요즈음에도 함평천지의 우리 소. 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식지 않고 있다 년에 국악협회 함평군 지부를 발기하여 열. 1986 심히 일하는 역대회장은 윤인상 김선일 최수복 신오성 옥경태 박문식 김성현씨가 맡아, , , , , , 오고 있다 비록 시조 창을 주로 한 모임이지만 여 년 동안 본회를 이끌어온 박문식 회. 20 장의 다음과 같은 증언은 참고 된다. 함평은 오래 전부터 창 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곳이다 신창으로 불리며 종-“ ( ) . 6唱 품까지 오른 정창업을 비롯 여성국악인으로 판소리 민요 창의 명수로 알려진 노장섭 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