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page

1184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씨의 글씨 작품들도 여러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화가(2) 한국화 문인화 부문,① ∙안동숙 아호 화백( , )安東淑 吾堂∶ 년 나산면 출신으로 일찍부터 활동하여 성공한 화단의 거장급 원로이다 일제강점기 무1922 . 렵 가난 속에 소년의 꿈을 키우기 위해 상경한 그는 어릴 적부터 이당 김은호 화백 문하( )以堂 생으로서 스승 집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고전적인 한국화를 익혀왔다 이당 오당이라는 아호. - 역시 스승이 자신의 화풍을 이을 재목으로 여겨 제자에게 손수 지어줄 만큼 깊은 뜻을 지녔다. 과도기 한때 간부급 공무원 신분도 지니고 한국전란을 겪으며 뒤늦게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였 다 이화여대 교수로 봉직하고 미술대학장과 미술대학원장을 역임하면서 수십 년 동안 여러 제. 자들을 길렀다 대한민국의 국전심사위원장을 비롯해서 비중 있는 미전의 심사 등을 주관했다. . 특히 한국화 가운데 창의적인 동물을 통한 추상화를 즐겨 그리는 남종화 화풍의 창의적( )南宗畵 성향이 두드러진다 목동과 신선이 산새들과 더불어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노닐듯 인간과 동물. , 식물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범아일여 와 자연 친화의 동양사상을 작품의 바탕으로( )梵我一如 삼고 있다 정년퇴임 이후는 경기도 광주군 남촌의 전원주택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정. . 원에는 함평천지서 직접 옮겨 심은 낯익은 고향 소나무들이 가득 오당화백의 마음을 채우고 있 다. ∙모용기 아호 근재 화백( , )牟龍基 ∶ 함평읍 태생으로 해방 이전에 일찍이 선전 에 두 번이나 입상했다 그러나( ) . 6. 25鮮展 전쟁 무렵 타개하였다. ∙김지상 아호 화백( , )金知常 雲呼∶ 년 함평읍 출신으로 정광고등학교 재단이사장도 역임하면서 그림에 임했다 초산1916 . 을 사사한 그는 한국화와 함께 문인화에도 능하였다 초기의 함평문림 에( , ) .焦山 通伯 《 》 문인화도 그려넣었다 일찍이 년대 중엽부터 잡지 등에 시를 투고하여 발표. 1930 東光《 》 한 이후 시도 쓰고 한동안 불가 에 몸 담았다가 돌아온 바 있다 서예도 겸했던 그는( ) .佛家 년대 초에 작고했다1990 . ∙이성운 아호 화백( , )李成雲 乙江∶ 년 황해도 안악 태생으로 동경 미술전문학교에서 수학했다 년대에 월남하여 우리1916 . 1950 고장에 정착하면서 미술활동을 하였다 여러 해 엄다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여회 개인. 10 전도 연 바 있다 초기의 함평문림 동인지에 표지화를 그렸다. .《 》 ∙윤영석 아호 화백( , )尹永錫 雲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