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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16 함평의 문학과 예술_ 1155 전 함평문화원장 작고 이국헌 당시 함평군청 근무 시인 아동문학가 김신, . ), ( , , , ),祥 李國憲 철 당시 함평문화원 총무 후에 아동문학가 리현석 당시 함평초교 교( , , ), ( ,金信哲 李炫石 사 나광채 당시 학다리고등학교 교사 김영운 당시 광인중학교 교사), ( , ), ( , )羅光埰 金榮雲 등이었고 회원은 한때 여명에 이르기도 하였다30 . 초대 회장 김경태에 이어 김신철이 회장직을 맡았으며 월과 월 두 차례에 걸쳐 군내4 10 초중고등학교 학생 백일장을 베풀어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리고 년 월 일에는. 1959 4 25․ 아담하게 동인지 창간호를 내고 년에는 집을 준비하며 회원의 작품발표와, 1960 2文林《 》 토의 등 문학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년 월 제 회 군내 초중고등학교 학생, . 1961 10 7 ․ 백일장을 끝으로 한동안 동면기를 가졌다. 그런데 함평 천지에 최초의 문예동인지로 창간되어 선보였던 이 휴면에 들어갔文林《 》 던 뒤 여년만에 다시 소생하였다 년 월에 함평에 거주하고 있는 옛 문림회원과30 . 1990 4 서오근 등 출향한 이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함평출신 문학인들이 모여 문림회를 전승하 기로 하고 이국헌을 회장으로 새로 선출하였다. 년 월에 속간호인 함평문림 집이1990 8 2《 》 출간되었다 창간호에 비해 그 분량도 갑절이 늘어서 여 쪽이었고 실로 한 세대 만에 얻은. 140 보람이었다 이어서 년 월에 제 집을 냈다 그 후 이 동인지는 다소의 군청지원도 받으면. 1991 6 3 . 서 매년 꾸준하게 한 권씩 출간되어 년까지 국판 쪽 정도로 호를 펴내오며 이 고장 문1995 300 7 학의 활성화에 이바지하였다. 다음은 희곡작가 김영관 조선대 교수 이 회장을 맡아 년부터 년까지 연간( , ) 1996 2000金永官 으로 집을 출간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군비 백만 원에 도비 백만 원 지원으로는 출판12 . 2 1 비가 절반 밖에 되지 않아 당분간 출간을 미뤄오고 있다 이들 에는 경향 각지의 함평. 文林《 》 출신 문사들의 시 동시 시조 한시 소설 수필 평론 및 희곡 등과 가끔 타지방 태생의 중견, , , , , , 문인들 글도 초대석으로 싣고 있어 돋보인다 출향문인들과 재향문인을 아우른 회원도 백 명. 1 을 헤아리고 있어 앞으로의 계속적인 출간이 기대된다. 함평문화 발간(2) ( )咸平文化 함평문화 는 종합지를 목표로 년 월에 국판 쪽 분량으로 창간되었다 함1966 10 300 .《 》 평의 성장과정과 문화의 소산을 찾고 창조적인 내일의 좌표를 열어주는 향토적 특색을 지 닌 함평문화원 기관지격이다 함평문화 는 향토문화 보호와 선양을 위해 다소의 국고 지.《 》 원을 받아 년에 문을 연 군 문화원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책으로서 이전의 군민 문예1965 동인지격인 문림과는 상이하다.《 그럼에도 우리 고장의 문화유적과 군정 소개 등을 제외하고 본다면 상당부분을 차( )郡政 지한 문학이나 예술관계 필진은 엇비슷한 것이었다 발간 실무진은 이국헌 김신철 리상. , , 등 전 문림회 주역들이었고 발행처는 함평문화원이었다 따라서 당시 문화원장이었던 이택. 헌이 대표가 되었다 함평문화 창간호는 목표대로 함평군 관내 기관의 현황과 전망 등. 《 》 이 소개되고 한시 시 동시 수필 소설 희곡 등의 창작물과 평론 및 우리고장의 사라져, , , , , “ 가는 옛 문화를 찾아보자 는 특별기획도 실려 환영을 받았었다” . 창간호 이후 년간은 경비가 없어 다음호를 펴내지 못해오던 중 년 월의 호부20 1986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