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4page

제 장16 함평의 문학과 예술_ 1149 또 망극하여 하늘에 우러러 부르짖고 땅을 치니 오장이 찢기고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의. 여덟 살 된 기 가 옷을 당기며 슬피 울었다 이날의 회포 말로는 다 나타낼 수 없다( ) . .奇 아들 우 는 초동의 처가에서 기르고 있기 때문에 바로 만나지 못했다 가련하다 집은( ) . .遇 불타 없어졌고 거리도 변했으며 마을도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의 얼굴도 옛날 같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것 비통뿐이다 오직 돌아와 아버님 모시는 것만이 다행이다. . 정호인 아호 의 정유피란기( , : )鄭好仁 隱窩∙ 또한 세 때 친동생 호례 과 함께 배를 타고 왜병들을 피해 가다가 같은 신세가 되었19 ( ) 던 정호인 의 역시 주목을 끈다 이 한문기록은 집안 아저씨 족숙(1579~?) . ( )丁酉避亂記『 』 인 정경득이나 정희득의 그것과는 차이가 난다 의 년 월 일부터 년 월) 1579 8 12 1599 7 23 같은 여 일의 삶을 일기문 형식으로 적었다 날짜도 위 족숙들의 경우와 많이 겹치지310 . 않는 편이다 일본 현지에서 왜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정호인은 글을 잘 모른다고 외면한다. . 시를 지으며 더불어 놀자는 의승 이 청을 하는데도 거절하자 스님의 노염을 사( )醫僧 長延 서 보름동안 밥마저 굶김을 당하기도 했다 일인들 호의를 거절한 것은 피난 나오는 배에. 서 부모가 그들로부터 죽임을 당한데 따른 적대의식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에 상관된 선비 의식 때문이다. 년 월 일 자의 일기에서 정호인의 심사를 살필 수 있다 삼년 갇혔다가 다행히1599 4 27 . 돌아오는 도중 또 다른 섬의 왜인들에 잡혀 있는 중에 쓴 시이다 밤에 죽으려는 것 마냥. 구슬프게 우는 새소리를 듣고 족숙이 읊은 시에 차운한 한시이다. 이 몸이 죽지 못하고 아직도 생명을 부지하니-“ 너와 더불어 슬피 우는 한과 다를 바 없구나 이미 그물 벗어나 환고향하는데 도리어 조롱 속에 갇혔으니 지금은 혼이나마 꿈에 고국강산을 넘어 가네” 참고로 옛날 함평인의 문학 활동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유고 와 여러 문집인데( )遺稿 옛 군지 에 유고와 문집이 있다고 기록된 사람들을 가문별로 묶어 보면 다음과 같다( ) .郡誌 유고 및 문집 일람( ) ( ) ( )遺稿 文集 一覽 성 명 본 관 아 호 ( )雅號 문 하 ( )門下 유고문집․ 참 고 김응인( )金應仁 김원삼( )金原三 김남식( )金南式 김재신( )金在臣 김영환( )金永煥 김 훈( )金 勳 김두삼( )金斗三 김병찬( )金秉燦 김기순( )金箕舜 김석환( )金錫煥 김두환( )金斗煥 김기서( )金麒瑞 김선일( )金善一 고성 〃 〃 광산 〃 〃 〃 〃 〃 김해 〃 낙악 선산 남 파( )南 坡 지 곡( )芝 谷 숭정처사( )崇禎處士 수 현 당( )守 玄 堂 송 암( )松 菴 동 해( )東 海 영 빈( )潁 濱 소 산( )小 山 초 연 재( )超 然 齋 지 송( )遲 松 국 포( )菊 圃 농 은( )聾 隱 성 헌( )省 軒 송연재와 교유 신독재( )愼獨齋 조숙재( )趙肅齋 기정진( )寄蘆沙 송병선( )宋秉璿 전우( )田遇 최익현( )崔益鉉 최익현( )崔益鉉 박농산( )朴濃汕 유 고 〃 〃 〃 〃 〃 유고집 〃 〃 유 고 〃 〃 문 집 인조조( )仁祖朝 순소조( )純祖朝 시 수 서간 편224,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