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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함될 다음의 일록류 는 색다르고 흥미로운바 많다 그것은 정유재란 때 왜병들의( ) .日錄類 침탈을 피하여 가까운 가족 일행이 바다로 나가다가 칠산 바다에서 납치되어 일본에 끌려 가 지내다가 삼년 만에 되돌아온 전란의 체험기 세 권이다 이 이색적인 기록들은 함께 배. 를 타고 가다 같은 장소 일본 에서 함께 납치생활을 한 이야기이( )南海道 阿波州 猪山城 므로 중복된 내용도 많지만 그런대로 형제와 조카의 시각이 상이한 내용을 드러내고 있다. 정경득 아호 의 만사록( , : )鄭慶得 湖山∙ 만사록 은 월야면 월악리 출생의 정경득 이 정유재란 당시 고( ) (1569~1630)萬死錄『 』 향에서 왜병들의 만행을 면하려 바다로 일가친척들과 피난 나가다 서해에서 둘러싸여 잡 힌 나머지 일본 땅에 갇힌 채 년 동안 겪은 기록문학이다 기록은 정유재란에 피난 떠나3 . 기를 논의하던 년 월 중순부터 귀국 후 년째까지의 일이 적혀 있다 칠산 바다에서1597 8 3 . 왜선에 포위되자 아녀자 여덟은 모두 바다 속으로 몸을 던져 자결하는 장면이 여실한 공 본 땅준다 일기체로 쓰이어진 문집에는 왜란 당시의 수난과 혼란 일및 일본 현지의 풍물. 등이 수많은 시문 들과 함께 실감 있게 실려 있어 흥미도 있다 특히 저자인 호산 정( ) .詩文 경득은 적국에 가서도 그곳 스님들로부터 시문과 인품일및 충효정신으로써 가객 으( )佳客 로 대접받다가 적장 을 감화시킨 나머지 친족 여럿과 외지 사람들까지 데리고 귀국( )家政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년 월 그믐날의 일기를 참고해 볼만 하다. 1598 12 . 왜인들도 역시 해가 바뀌는 것을 알아 집집마다 모여서 마신다 왜인 주인이 술을 가- . 지고 와서 위로한다 스스로 생각하니 이 해도 다 갔는데 아직도 딴 나라의 나그네 신세이. 니 오늘의 회포 평시보다 갑절이나 더 하다 이날 박수영이 와서 말하기를 나는 본래 서. , “ 울사람으로 예빈시 서리 로 있다가 임진년에 포로가 되어 왔습니다 라고 하였( ) ”禮賓寺書吏 다. 정희득 아호 의 해상록( , : )鄭希得 月峰∙ 이 기록은 정경득의 아우인 정희득 이 정유년 피난 때 왜인들에게 잡힌 몸(1572~1640) 이 되어 함께 겪은 내용에다 일부만을 첨삭하여 그의 증손 이 후에 표지( )萬死錄 德休『 』 이름을 바꾸어 전한 것이다 같은 포로처지로 일본인 땅에서 여러 친척들과 삼년동안 겪다. 가 돌아온 일을 기록한 것이므로 전자와 시간이나 배경은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왜적들과. 의 삶에서도 이미 그곳에 잡혀와 지내는 영광의 강항 광주의 고경민 창평의 이갑( ), ,姜沆 소식을 듣고 풍신수길이 죽은 풍문도 알아차리는 사정이 흥미롭다 가벼운 천 훈도시 으. ( ) 로 배꼽아래 부분만 가리는 등의 일인들 풍속을 묘사한 왜속 은 물론 칠산 바다에 투신「 」 했던 아픔에 꿈속에서 죽은 아내가 내게 밥 주는 것을 보고 깨어나 슬퍼함 등이 눈에「 」 띤다 이 문집 말미의 부록인 는 당시 왜병들에게서 유사한 포로 체험을 기록. < >風物記 한 이웃고을 영광 출신 강항 의 과 유사한 내용으로서 참고 된다( ) .姜沆 看羊錄『 』 드디어 집에 돌아온 년 월 일 자 해상록 일기도 눈에 띤다 집에 도착했다1599 7 20 . - “ . 입성 하셨던 아버님이 밤에 돌아오셨다 손을 잡고 슬피 울었다 어머님은 기둥이시( ) . .入城 다 어머니와 형수 그리고 아내와 누이동생이 바다에서 겪은 변고를 생각하니 망극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