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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6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서 의병을 해산하고 사위 이시우가 귀향하던 날 사호에 배띠우고 연기 서린 언덕에」「 」「 목동의 피리소리 가을밤에 기성태수 이홍망께 송도를 지나며 등에서처럼 외세」「 」「 」「 」 의 침략에 대한 가족의 대응과 영산강변 사포에서 지내는 전원의 정취 및 옛 추억이나 함 풍 현감에 보내는 글 등의 일상적 주변의 삶과 서정성 짙은 향취가 스미어 있다. 윤제민 아호 의 잠정자시집( , : )尹濟民 岑鼎子∙ 년 대동면 상옥리 태생인 선비로서 세에 진사과에 합격했다 당대에 호남의 명문1634 19 . 장가로 꼽히던 인물로서 처음 외면했던 것과는 달리 년 작고하기 이전까지 여러 벼슬1690 도 지냈다 성균관 선비들의 추천에 의해 공릉참봉이 된 후 내자봉사 사헌부. ( ),內資奉事 감찰을 거쳐 만년에는 학성 현감으로 고을을 일으켜 지방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鶴城 전한다 이런 그의 한시들은 임진왜란 때 장성 남문창의의 주역이었던 윤황 아호 과. ( : )老坡 윤길 아호 형제에다 윤황의 증손인 그 윤제민 까지 세 사람 의 글을 모은( : ) ( ) ( )夢坡 三賢 가운데 권에 실려 있다 그의 한시들에는 시대를 탄식함 역사를4, 5, 6 .三賢實記『 』 「 」「 읊음 웅진을 지나고 아내의 죽음을 슬퍼함 옥수암에서 옛날을 회고함 등에서처」「 」「 」「 」 럼 시대상과 역사의식 및 개인사에 걸친 문제를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태희 아호 의 애오재문집( , : )李泰熙 愛吾齋∙ 신광면 월암리 태생인 애오재 이태희 는 일찍부터 출중한 인물로 성장해(1761~1823) 왔다 정조와 순조 때 예조좌랑과 병조좌랑을 거쳐 사헌부 장령 통례원 좌통례 고산찰방. , 등을 지냈다 이렇게 오랜 관직생활 중에 백두산이나 칠보산 등에 이르기까지 전국 여러. 지역을 방문하거나 생활했던 경험을 지녔다 이런 경륜이나 체험을 살려 쓴 그의 글을 그. 의 후손들이 문집으로 보관해 온 것이다 필사본으로 전해진 문집 권 책에는 한시. 2 2 448 수가 실려 있다 등은 여. 南幸歌 朴淵次韻在松都大興山城 金剛窟 長白山積雪「 」「 」「 」「 」 느 문사의의 글세계와는 다른 맛을 보인다. 안지환 아호 의 태허재 유고( , : )安志煥 太虛齋∙ 년 나산면 출생으로 문간공 송치규 의 문하생으로서 당시 문명이 높았다1774 ( , ) .文簡公 시문이 뛰어나서 경향 각지의 선비와 관원들이 그의 한시를 베껴 써 간수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년에 작고한 그의 가운데 실린 한문시에는 무명꽃. 1851 (太虛齋遺稿 木綿『 』 「 주포에서 명승지를 두루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등의 서정성을 띤 것과 새 살)花 」「 」 「 림을 시작하면서 함평에서 부른 노래 등의 일상생활을 노래한 내용이 많( ) ( )新寓 咸歌」「 」 다 그런가 하면 그밖에 열 가지 군정 이라 해서 젖먹이 아이나 노인들에게까지. ( )十丁「 」 억지로 일을 강요하고 세금 매기는 위정자들을 지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의 글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으나 후손들이 찾아 모아서 문집으로 햇빛을 본 것이다. 김두삼 아호 의 영빈유고( , : )金斗三 潁濱∙ 또한 구한말 무렵에도 백여 편의 한시 작품을 남겨놓은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먼저 손불( )漢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