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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난 근년에 관계 당국과 문중 및 뜻 있는 분들의 협력에 의해 년에 여섯 번 째의 현세적 모1998 습으로 완건 되었다 다만 문장가로서 집대성된 저서라 할 수 있는 수수기 권이 조. ( ) 9隨手記  선조 당시 당파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실되어 여러 언서 시조 등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 지 못한 것이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전에 없이 치열한 당쟁에 희생된 곤재가 세 때부터 논39 학 석의 논례 논리 산수 의학 역학 등을 다룬 역저인( ), ( ), ( ), ( ), , , ( )論學 釋義 論禮 論理 易學 우득록 세 권은 왕명에 의해 사후에 간행되어 시 일부도 전해진다 당시 동방의 참( ) . “愚得錄『 』 된 선비로서 모름지기 이황 퇴계 에 버금간다 고 곤재를 기린 윤선도와 허목이 손수 고정( ) . ” ( )考訂 을 본 이 책에는 다행히 한시 편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일상사나 학문에 대한 소( ) 12 .漢詩 감과 선비의 의연한 기개및 인간미 넘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서 특히 무제. ( )無題「 」 서고청과화하여 운을 일으킴 회포를 술회함 회포를 읊음 수( ) ( ) , 3 ( ,和徐孤靑 述懷 詠懷「 」「 」「 박사암의 운에 차운함 은 한국명시선 에 올라 있다) ( ) .三首 次朴思菴韻」「 」 『 』 나덕원 아호 의 사담집( , : )羅德元 沙潭∙ 사담 나덕원 은 본디 관향인 나주 문평에서 태어나서 학교( , 1548~1610?)沙潭 羅德元 면 금송리로 이거해온 금성 나씨 이조판서공파 입향조이다 곤재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은. 그는 덕행과 학문으로 널리 알려졌다 후손들에 의해서 년에 번역 출간된 시문집. 2005 , 에는 사담의 행적과 그의 시 작품들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년 사마시. 1573 (沙潭集 司『 』 에 합격한 그는 임진왜란 때에는 뜻 있는 친인척들과 분연히 창의하고 앞장서서 전)馬試 라도내 여러 주와 군현에서 수천의 의병을 규합해 싸웠다 년에 오수 찰방에. 1594 ( )獒樹 제수되고 함창 현감을 지내는 동안에 일어난 정유재란을 당해서는 손수 관하 군사들( )咸昌 과 병마를 이끌면서 전국 여러 곳에서 가등청정 군대 진지를 공략해 전과를 올린 바 있다. 그리고 두 왜란이 끝나자 귀향한 사담은 글쓰기와 위선사업 및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년에 묶어놓은 이 시문집에는 만서 와 한시 편 기 편이 수록되어 있1609 ( ) 308 , ( ) 2漫書 記 다 권에는 서와 등 오언절구 수 등 오언율 수 권에는. 1 44 , 50 , 2過長水新院 次梅竹軒韻「 」 「 」 등 칠언절구 수 등 칠언사율 수 분포로 실려179 , 23次思君韻 登鵂岩臺 宿廣州村「 」 「 」「 」 있다. 이덕일 아호 의 칠실유고( , : )李德一 漆室∙ 대동면 향교리 출신의 선비로서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던 이덕일 의 작품이 돋보인다 그의 칠실유고( ,1561~1622) . (李德一 漆室遺 에 남긴 우국가 는 국한혼용 의 가사문학 으로서 새롭게) ( ) ( ) ( )稿 憂國歌 國漢混用 歌辭文學 평가할 작품이다 왜란 때 전공을 세우고 병조좌랑 통제영 우후 등을 지낸 뒤 낙향하여. , 스스로 칠실 이란 작은 집을 짓고 은거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을 담아낸 시가이다“ ” . 언뜻보면 시조처럼 매 장마다 초장 중장 종장 형식으로 장을 이룬 우국가 는, , 28 ( )憂國歌 내용이나 배경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임진 정유 왜란의 뼈아픈 체험을 되. , 새겨 읊은 노래 사색당쟁을 보고 상심한 노래 충심으로 간청하고픈 심정을 읊은 노래 등, , 이 그것이다 일찍이 남달리 빼어난 문장을 익힌 그는 함께 과거 별시 에 응. ( ) ( )科擧 別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