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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15 언 론_ 1137 읍 기각리 출신 이시헌은 동아일보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광주일보사에서 재직하고 있는 정상. 규는 제판부장 윤길전은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손불면 산남리 출신 전덕룡은 씨알의 소리 편, . 집국장을 지냈으며 김영택은 동아일보 기획위원을 역임했다. 함평에는 광복전부터 조선일보 지국 동아일보 지국이 있었는데 이들 지국 주최로 호남정구대회, 를 유치하는 등 체육 진흥에 힘쓴 바 있으며 항일사상을 심기도 했다 그 후 중앙과 지방에서 발. 간되는 신문의 지사 지국이 읍소재지는 물론 면소재까지도 파고 들었다, . 이러한 현상은 년 까지 계속되었는데 당시의 지국 지사와 보급상황을 알아보면 표 와1976 , < 2> 같다. 년 군내 총호수는 호였다 호당 보급률은 며 전남일보 중앙일보 전1971 21,595 . 35.62% , , 남매일이 보급상위였고 신아일보와 대한일보가 하위였다. 당시 상황으로 애독자는 한계수가 있고 신문의 지국 지사 수는 많아 읍면에서 출입께나, 한다는 사람은 가지 이상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고 공무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3 한 사람이 여가지 신문을 보아야 했다 한 번도 읽지 않고 신문이 며칠이면 책상서랍에10 . 그득히 쌓였다는 일화가 있다 특히 년까지는 지국 지사장이 지방의 기사를 취급하. 1970 , 고 있었다 이에 대한 폐단이 많았다 그래서 년 지방의 지사 지국을 보급소로 개칭. . 1971 , 하고 군청소재지에는 지방에서 발간되는 신문사의 특파원이 명씩 주재하여 기사 취재활1 동을 하게 하였고 그외 서울 등지에서 발간되는 신문은 광주에 주재하는 특파원이 맡게 되었다. 이 조치에 의하여 전남일보는 김녕호 기자가 전남매일은 처음에 노명규 후에 이건진 기, 자가 기사 취재를 했다 년 월 일 전남일보와 전남매일 신문이 통합하여 광주일보. 1980 12 1 가 되면서 방재호가 주재기자가 되었으며 그간 상당수의 일간지와 경제지가 정리되었다. 표 일간지와 경제지 지국 지사 현황< 5> , 구 분 신 문 명 지국 지사장 보급상황 비고 서 울 신 문 홍 성 만 326 동 아 일 보 신 자 철 130 조 선 일 보 홍 성 만 250 경 향 신 문 부 보급하다 지국폐쇄400 한 국 일 보 이 영 기 200 세 계 일 보 국 용 부 300 중 앙 일 보 김 용 균 900 국 민 일 보 김 철 수 100 한 겨 레 신 문 최 권 진 200 광 주 일 보 임 기 영 670 무 등 일 보 김 광 철 900 전 남 일 보 서 영 록 900 전 남 매 일 이 경 신 광 주 매 일 이 연 행 700 호 남 신 문 김 청 수 700 전 광 일 보 김 영 판 도 민 신 문 지국 폐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