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page

제 장14 종 교_ 1125 시작한 것이다. 함평의 기독교2. 교육과 의료를 통한 포교활동으로 서서히 이땅에 정착하기 시작한 개신교는 년초에1890 목포항에 선교사가 들어오기 시작하여 정명학교 영흥학교 등을 세우고 교육을 통한 선교, 를 동반하게 되었다. 당시 목포선교부 소속 배유지 선교자 에 의해 년 봄 나주군 삼(ReV, ugene Bell) 1900 도리 교회에서 함평군 성정교회 현용성교회 전신 가 세워졌다( ) . 이때 있었던 일화가 있는데 당시 대동면 용성리에 세워진 교회를 어느날 돌아보기 위해 유서백 선교사가 목포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이곳에 왔다 사냥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 는 장총을 어깨에 둘러매고 와 용성마을 뒷산으로 노루사냥을 가게 되었는데 당시 교인의 한 사람이었던 최인석이 유선교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대접하고자 달걀을 소반에 담아 교회로 달려오니 이미 뒷산으로 사냥을 떠난 뒤였다 최인석은 다시 집에 돌아가 하얀 두. 루마기로 정장을 한 뒤 뒷산으로 계란을 들고 올라가 유선교사를 찾았다 그러나 공교롭게. 도 유선교사와 최인석은 정 반대쪽에서 찾게 되었고 한참 숨을 죽이고 총을 겨누고 있을 즈음에 저 건너편에 무언가 하얀 물체가 어른거렸고 같은 방향에서 노루 한 마리가 서성 거리고 있어 유서백은 여지없이 총을 쏘게 되었다 그런데 그중에 탄알 하나가 유서백을. 찾아 헐레벌떡 올라오던 최인석에게 맞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흰 두루마기의 최인석은 뒹굴었다. 그때서야 깜짝놀라 달려가 보니 다행히도 총탄은 최인석의 허벅지에 박혀 중상은 아니 었고 유선교사가 응급조치로 총탄을 제거한 후 동네로 업고 내려왔다 토수장이었던 최인. 석은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목포 정명학교에 재직 중이던 유서백 선교사의 비서로 발탁되 어 계속 일하다가 년 노환으로 작고했고 그의 장남은 현 목포 그리스도교회의 목사가1981 되었다 최요한 이때가 년에서 년경으로 추산되는데 그후 년경에는 이곳.( ) 1906 1908 1923 함평지방에 가장 포교활동이 활발하고 교회설립이 왕성한 시대였다. 그 배경은 처녀 선교사인 마율리아 의 전도 때문이었다 마율리아 선교사는 유서백.「 」 선교사의 뒤를 이어 대동면 용성마을에 근거를 두고 인근에 있는 부인들을 모아 이들에게 월 원씩의 전도비를 지급하면서 각 동네를 돌아다니며 예수 믿으라 는 전도를 시켰다3 “ ” . 이때 동원된 숫자가 항상 여명이나 되었고 당시 전도를 하던 부인들에게 지급된 원은30 3 장정의 임금보다도 웃도는 금액이어서 아예 대동면 부녀자들은 직업삼아 전도의 일선에 나서게 되어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는 초석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후 명애다 선교사는 이미 세워진 교회를 순회하며 교육에 중점을 두고 각 교회에「 」 가서 부흥사경회를 개최하여 교인들의 양식을 높였는데 당시 정명여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었고 특출한 미모에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처녀 선교사였다. 그 외에 고무공장 굴뚝 이라는 별명을 가진 조 마그렛 여사가 있는데 역시 정명학교 교“ ” 「 」 장으로 재직중 음악에 조예가 깊고 키가 큰 미인으로 예능지도에 공헌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