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page

116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나 참고인 진술조사. 참고인 진술조사는 참고인 여명을 대상으로 사건의 실재여부 확인 및 년을 전후한 함118 , 1950 평지역 상황 진실규명대상자의 희생사실여부 확인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 참고인은 신청인이 추천한 참고인 년대 초반 출생자 중 현재까지 함평군에 거주하, 1920~1940 는 고령자를 주 대상으로 하였다. 진술조사를 통해 확보된 진술 중 희생자들의 연행 감금과정 희생과정 시신수습처리과정을, · , , ․ 경험하였거나 목격한 신청인 및 참고인의 진술을 우선적으로 조사결과에 반영하였다. 32) 또한,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참고인이 없는 경우에는 희생자의 연행 희생과정 혹은 희생자· 의 시신수습 처리과정을 경험목격한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었거나 제삿날 등과 같이 희생자와· , ․ 관련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참고인의 진술을 조사 결과에 반영하였다. 다 현지조사. 총 차례의 현지조사를 통해 신청인 및 참고인을 면담하였고 사건 발생현장을 확인하였으며6 , , 사건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제 차 현지조사는 에 함평군 대동면에서 제 차 현지조사는1 2009.2.23~2.27. , 2 에 손불면에서 제 차 현지조사는 에 신광면에서 제 차 현지2009.3.16~3.20. , 3 2009.4.6~4.10 , 4 조사는 나산면에서 제 차 현지조사는 에 나산면 해보면에서 제4.1~5.1 , 5 2009.5.25~5.29. , , 6 차 현지조사는 에 함평군 일대에서 실시하였다2009.6.29.~7.3 . 조사결과2) 사건배경(1) 함평지역은 광복정국 및 한국전쟁기의 정치적 성향으로 볼 때 우익성향이 강하고 해방정국에, 서 다른 지역에 비해 좌우대립이 그렇게 심하게 표출되지 않았던 곳이었다 해방직후 결성된. 함평 건국준비위원회 결성 의 위원장에 일본대학을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하에서 관료‘ ’(8.16 ) 로 근무한 경력이 있던 이재혁이 추대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33) 하지만 함평지역은 함평지역 내의 정치적인 성향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불갑산이나 군유산 등 산악지역이 있, 어서 나주나 목포 등지에서 활동하던 좌익 활동가들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그들 의 주도하에 강력한 정치적 행동이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이다.34) 년 구국투쟁 및 선거 반대투쟁 여순사건 등을 거치면서 좌익단체활동1948 ‘27 ’ ‘510 ’ ‘ ’ ․ ․ ․ 가들은 무장투쟁 및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함평지역 역시 무장세력 빨치산 과 군경과의. ( ) 32) 희생자의 가족이나 일가친척이 아닌 경우 참고인들이 정확한 희생일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 경우에는 참고인들의 진술로는 사건의 실재여부를 판단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물론 시신 수습했거나 현장을 목격한 날짜를 정확. 히 기억하는 참고인의 진술이 있을 경우에는 신청인의 주장과 엇갈리더라도 참고인의 진술에 따랐다. 33) 안종철 광주전남 지방현대사 연구 한울아카데미 쪽 이재혁은 일본대학 법률과를 졸업하고 총, , , 1991, 105~106 ;『 ․ 』 독부 관리 도 평의원을 지낸 경력이 있으며 천여 두락을 소유하고 있던 지주였다, 1 . 34) 함평군 함평군한국전쟁기간민간인희생자피해연구보고서 쪽, , 2006, 27-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