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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11 사회복지_ 1015 는 더욱 고조되었다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단은 경찰에 강력 항의하는 한편 이 날짜로 전국. 모든 교회에 단식자들의 상태와 의지를 알리는 통지문을 보내고 적극적으로 호응해 줄 것을 호소했다 오후 시 쯤 윤공희 대주교가 단식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기도와 위로의 말을 건네. 1 며 잠시 단식 농성자들과 자리를 함께 했고 광주대교구 소속 신부들도 농성자들의 뜻에 적극 동참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함에 따라 단식투쟁은 함평지역 차원이 아니라 천주교광주대 교구 차원으로 격상되었다 이 날 회관에서 열렸던 인권기도회 참가자들은 기도회가 끝. YWCA 난 후 단식농성현장으로 몰려왔으나 기동경찰이 무력으로 강제 저지하는 한편 여명을 연행20 하는 바람에 농성에 동참할 수가 없었다 특히 가톨릭농민회 탄압을 중단하겠다는 당국의 약. 속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국 홍보부장과 조봉훈 회원이 전날 연행되기도 했다 특히 경. 찰은 여비와 숙식비를 지원하면서까지 단식 농성자들의 가족을 단식현장으로 초치 설득토록, 공작해 농성장을 억지로 와해시키려 시도하기도 했다 이날 광주 에서는 북동성당에서. YWCA 단식농성투쟁 중인 가톨릭농민회원들과 함평고구마피해농민들을 위한 기도를 열었다. 농성 나흘째인 일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고립된 단식농성회원들은 전국회원들에게28 단식 현장을 상세하게 알리고 그들의 성원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 회원들에게 보내는 호소문‘ ’ 을 채택했다 오후에는 서울에서 문익환 목사를 비롯한 각계 양심인사들이 줄지어 단식현장을. 찾아와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며 위로금을 전달했다 전날 연행된 이상국 조봉훈 두 회원. ㆍ 의 소식은 아직도 캄캄 무소식이었다 경찰의 농성장 감시는 더욱 삼엄해졌다 회원들은 경찰. . 의 비열한 수법에 의해 단식농성이 강제 해산될지도 모른다는 긴박감을 느끼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기도로 밤을 새우기로 했다. 이 날 오후 시쯤 광주시 동구 금남로 가 가톨릭회관 층에 있는 광주대교구장 사제관2 3 7 에서는 농민회 측과 당국간의 협상이 열렸다 농민회 쪽에서는 윤공희 대주교와 가톨릭농민회. 및 전남지구연합회 지도신부 및 함평고구마피해보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서경원 그리고 가톨릭 농민회 대표가 농협 및 당국에서는 고건 전남도지사와 농협도지부장 중앙정보부 광주분실장, , , 전남경찰국장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농민회 탄압중지와 연행된 회원석방에 대한 약속은. 있었지만 피해보상에 대한 농협 측 안으로 월 일까지 피해액의 분의 를 지급하겠다는5 31 3 2 극히 막연하고 무성의한 미봉책이 제시되었다 농민회 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협상. . 은 즉각 결렬되었다. 다음 날인 월 일 아침 농협도지부 판매과장이 북동성당에서 단식 중인 서경원 위원장4 29 을 찾아와 만원 현금을 제시하며 생산 장려금이라는 명목을 붙여 타협하자고 제의해왔다309 . 서경원 위원장은 단호했다 어디까지나 고구마피해보상금이라는 명목이 붙어있지 않으면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문서작성도 요구했다 잠시 후 농협당국의. . 요청으로 아침부터 북동천주교회 인근 커피숍에서 서경원 위원장과 판매과장 등 실무자 중심 으로 협상이 재개되었다 농민회 측에서는 지도신부 및 농민회 대표 함평대책위원회 서경원. , 대표 등이 참석했고 농협 측에서는 도지부 판매과장 중앙정보부 조정관 도경 형사실장 등이, ,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농협과 경찰은 피해손실금으로 계산된 만 원 전액을 보상하고. 309 7,085 이상국 조봉훈 두 회원을 즉각 석방하겠다는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투쟁과정의 경비도 요구.ㆍ 했지만 거부되었다 농민회 측은 명의 단식농성자들이 실신하는 등 더 이상 버틸 힘마저 소. 6 진되는 바람에 고구마피해 간접보상이라는 명분을 붙인 협상안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개월에 걸친 함평고구마피해사건은 이렇게 매듭지어졌다18 . 394) 이 날 개신교인 양림교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