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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11 사회복지_ 1009 산에서 나무 한 가지 베어다 땔 줄 아느냐 집안에 막걸리 한사발이라도 발견되면 가만두지‘ ’ ‘ 않겠다 고구마 사건으로 경비를 들여 목포법원까지 꼭 갈 것이냐 그렇게 간다고 재판에서’ ‘ ’ ‘ 이길 줄 아느냐라고 위협하며 농민회와 대책위원회 투쟁대열에서 이탈하도록 강요했다 뿐만’ . 아니라 농민회까지 협박했다 이 같은 회유와 협박이 가해지자 농민들은 하나 둘 투쟁대열에. 서 이탈해 나갔다. 382) 심지어 농수산부에서 피해조사를 실시하여 피해액이 농민회에서 조사한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여기에는 자유와 인권유린을 다반사로 일. 삼으며 무조건 굴종하기를 바라는 자기 마음에 반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기본지침을 바탕으로 하는 유신독재정권의 기본속성이 내포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면서 경찰은 오히려 서경. 원 농민회장과 일부 회원들에 대해 사상이 불순한 사람 북괴에 동조하는 의심스러운 사람들‘ ’ ‘ ’ 이라 했고 가톨릭농민회와 대책위원회 투쟁을 공산당 식이라며 빨갱이로 몰아붙이는가하면‘ ’ ‘ ’ 나중에는 서경원은 간첩이라는 소문까지 공공연하게 퍼뜨렸다‘ ’ . 383) 심지어 년 월 일1977 12 3 대책위원회 교육담당 및 함평가톨릭농민회 분회장인 노금로 당시 세 가 거주하는 함평읍 내( 29 ) 교리 외대화마을에 읍사무소 직원 명과 군청직원 명 등 명의 공무원이 나타나 지붕개량을6 2 8 ‘ 하지 않았다며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고 있던 노금노 모종만 김정선 김월선 한재열 초’ ㆍ ㆍ ㆍ ㆍ 가집 다섯 채의 지붕을 난데없이 철제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갈고리로 헐어버렸다 고구마 피. 해보상운동에 대한 보복차원으로밖에는 달리 해석할 수 없는 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384) 그러면서 국민총화를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협박하며 회원들의 보상요구시위와 항‘ ’ 의집회참가를 겁주는 탄압을 계속 되풀이했다 심지어 회장인 서경원이 생산한 고구마 부대. 51 를 전량 수매해주겠다는 등 대책위원을 비롯한 몇몇 간부들의 고구마는 썩은 것까지 전량 수 매하겠다는 회유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대책위원회 간부들의 것을 모두 수매함으로써 다. 른 위원들이나 농민들로 하여금 상호 불신토록 이간질하여 대책위원회나 가톨릭농민회를 와해 시키려는 저의가 깔려있었다 이런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농민들의 하소연은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당초 시위에 참가했던 여명의 농민들이 대부분 이탈했다. 500 . 그렇다고 농민들과 대책위원회로서는 그냥 물러날 수는 없는 법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투쟁할 것을 다짐하고 나섰다 마지막까지 남은 명은 함평뿐만 아니라 농협도지부가. 179 있는 광주시내의 천주교교회는 물론 개신교교회 등 종교계의 호응을 받아 적극적인 항의와 보 상운동을 펼치고 나섰다. 해를 넘긴 년 월 농협이 농민들의 요구를 묵살한 채 시종 무마와 회유로 일관하며1977 1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자 가톨릭농민회와 대책위원회는 월 일 오전 시 함평천주교회1 10 10 에서 모임을 갖고 그동안의 활동경과와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했다 농민대표와 대책위원 및. 함평천주교회 주임신부 등 명은 한국가톨릭농민회 전라남도지구연합회 이름으로 농협의23 ‘ ’ 반응이 없으면 강경한 투쟁을 벌이겠다는 의연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본 고구마사건에 관한 확실한 답변을 요구한다1) . 382) 년 월 일 서경원 년 월 일 노금노 증언2009 6 2 2009 8 19ㆍ 383) 년 월 일 서경원 증언2009 6 2 , . 384) 년 월 일 노금노 증언2009 8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