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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발단 배경② 농협중앙회가 년산 고구마 수매자금 억원을 지원받아 이 자금을 목적대로 사용하지1976 120 않고 억원을 주식회사 보해 등 개 주류제조회사에게 대출해 주고는 생산농가에 수매자금으80 7 로 지원한 것처럼 장부를 꾸몄다. 당초 각 읍면 단위농협은 년 월부터 마을별 순회좌담회를 열어 년산 고구마는 농1976 3 1976 협을 통해 월까지 계통 출하 할 것을 선전하였고 농협 수매가도 들이 포에 원을10 , 15 1 1,317㎏ 제시했었다. 농민들은 농협의 약속을 믿고 농협이 배포한 수매용 포대에 고구마를 담아 자동차 운송이 용 이한 도로변에 야적했다. 그런데 각 단위농협들이 당초 약정한 물량을 제 때에 수매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고구마를 생산한 여 농가는 썩어가는 고구마를 중간상인들에게 팔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값7,300 도 포당 원의 헐값에 또 농협 포대에서 일반포대로 바꾸면서 포대 수마저 엄청나게1 300~800 , 줄었다. 실례로 대동면 백호리 거주 임정택은 포를 상인들을 통해 포대 당 원에 팔았는데 감400 1 450 량을 나 계산했다40% . 그 나마 팔지 못한 고구마는 노변에 야적된 채 썩어가고 있는 형편이었다. 농협과 정부에 대한 농민의 원성이 극도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함평군의 가톨릭농민회원들이 진상규명 및 피해보상운동을 착수하였다 당시 이 같은 현. 상은 함평군만이 아니라 인근 무안군을 비롯 전남북 전역이 같은 실정이었는데 유독 함평군의 가톨릭농민회원들이 진상파악과 보상운동을 펴게 된 것은 년 농협강제 출자금 거부운동을1975 벌이며 집적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동 진행과정과 결과 개요③ 서경원 노금노 임정택 임재상 장성일 모영주 정병오 지성철 박1976. 11. 17 , , , , , , , , ∙ ∶ 명섭 김갑현 장두병 조용진 등 농민대표가 모여 함평군 고구마 피, , , “ 해보상 대책위원회 를 발족시킴과 동시에 피해조사에 나섰다” . 농협의 방해와 경찰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개 읍면 개 마을 농1976. 12. 20 5 9 179∙ ∶ 가의 피해보상을 조사하였다. 함평천주교 광장에서 조사된 피해액을 농협 측에 알리기로 하고 보상1977. 01. 11∙ ∶ 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함 경찰은 긴급조치 호 위반으로 대표자를 연행하고 농협은 깡패들을 동9 원하여 농민들로부터 자의에 의해 판매하였다는 확인서를 반강제적으 로 받음. 가톨릭농민회 대전본부와 전남연합회 정기 총회에 사건을 보고하여1977. 01. 30∙ ∶ 도단위 대응을 결의함. 농협 측의 협상제안으로 농협도지부 판매과장과 대책위원들이 협상을1977. 04. 18∙ ∶ 가졌으나 결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