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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12월 6일이었다. 순사 가와노(河野鶴寄)와 니시카와(西川勘作)는 밀정 5명을 끌고 취침 중인 안충경을 급습하여 체포하였다. 안춘경은 “재거의 목적을 달치 못하고 너희들에게 체포됨은 종생(終生)의 유한이다”라고 원통해 하며 저항하였다 1910년 5월 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⑮ 강명선과 강상봉 강명선(姜明善, 1880∼1944)은 경기 마전군 서면 출신이다. 1907년 군대가 강제로 해산된 후 대한제국군 특무정교 출신인 박종환(朴宗煥) 의병진에 참가하였다. 그는 강대여(姜大汝) 등과 함께 장단과 마전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마전군 서면의 최사음(崔舍音) 집에서 곡식을 거두는 등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같은 해 9월 29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1908년 11월 10일 대심원에서 소위 ‘내란죄’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강상봉(1889∼? )은 경기 통진의 포수 출신이다. 정용대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 풍덕·교 하·통진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강상봉은 정용대 의병장의 지시로 정치삼 등과 함께 1908년 4월 경기도 풍덕군 조강리에서 일본 순사대와의 전투에 참여하였다. 그는 교하군 분포동에 서 실탄을 확보하는 일을 하였으며, 이후 의병 활동의 재개를 모색하며 통진군 봉상리 자택 에 잠복해 있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1908년 7월 14일 고등재판소평리원에서 ‘내란죄’로 유형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⑯ 권득수 권득수(權得洙, 1873∼1907)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족보에는 각(恪)으로 기입되었 으며, 자는 성근(成根)이며 본은 안동이다. 부친 권신영(權信榮)은 무과 출신으로 안동권씨 추밀공파 정승공(政丞公)의 33세손이다. 72) 권득수는 김정화(金正和)의 문하에서 한학을 수 학하였다. 또한 그는 무장으로서의 기상도 뛰어나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1905년 양평군 양근리 장로교 신자인 홍씨 부인의 집에 정착하였다. 그는 장로교회를 72) 『안동권씨추밀공파대보』. 4. 경기·강원 지역의 의병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