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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⑬ 엄해윤 엄해윤(嚴海潤, 1863∼1909.11.30)은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 의원이었다. 진주의병장 노응 규가 1906년 가을 충북 황간의 상촌면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노응규와 서은구(徐殷九)의 권 유로 의병에 참여하였다. 선봉장으로 무기를 수집 제조하고 군사들을 모집하여 훈련을 실시 하였다. 이윽고 병력이 증강되자 총기와 화약을 모아 무장하고 경부철도와 일본군 시설을 파 괴하였다. 이들은 장차 서울로 진격, 일본 세력을 물리치려는 웅대한 포부 아래 투쟁하였다. 그러나 1907년 1월 밀정의 간계에 속아 의병장 노응규를 비롯한 중군장 서은구, 종사 노공일 (盧公一)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들은 옥중에서 강경한 태도로 항일의 대의를 주장하며 절 개를 굽히지 않았다. 결국 노응규 의병장은 그해 2월에 옥사하고 엄해윤은 그해 5월 18일 고 등재판소 평리원에서 유형 7년을 받아 황해도 장연군 백령도로 유배되었다. 광무 황제의 특사로 유배에서 풀려난 1908년에 그는 다시 이은찬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는 이은찬 의진에서 참모로 활동하였으나, 1908년 음력 12월 이종협 (李鍾協)이 분리 독립한 뒤에는 이종협 의병진의 참모로 활동하였다. 1908년 12월 황해도 금 천·토산군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09년 4월 13일 탈출했으나 다시 체포되어 1910년 10월 18일 대심원에서 ‘내란죄’로 교수형을 선고 받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9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⑭ 안춘경 안춘경(安春京, 1878∼? )은 경기 수원군 태촌면 진언리 출신으로 대장장이였다. 1907년 8 월 정주원의 권유로 의병에 가입하였다. 선봉장으로 4백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충청도 홍주 군 일대와 경기도 수원·안성·용인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음력 12월에는 수원의 광 덕에서, 1908년 음력 6월에는 문덕준 등과 함께 수원군 청룡면 대미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 금하였다. 그는 정주원이 체포된 뒤에는 스스로 대장이 되어 활동하였다. 1909년에는 이천 경·정성삼·최육해·배수만·이춘명·차언석·노준경 등 의병을 지휘하고 경기도 일대에 서 활동하였다. 1909년 이천경과 정성삼이 체포되면서 안춘경의 은신처가 노출되어 결국 1909년 12월 수 원군 문시면의 처가집에서 수원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말았다. 그의 은신처가 알려진 것은 중부 지역의 의병 전쟁과 의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