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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강원도 원주에서는 이은찬과 이구채가 의병부대를 결성하고 전국적인 규모의 의병대를 구 축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여주 출신으로 전기 의병기에 유인석 의병대에서 활동한 이인영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활동하였다. 이인영은 원주에 의병원수부를 설치하고 관동창의군을 봉기 하여 다음과 같이 편제하였다. 대 장 : 이인영 총 독 장 : 이구채 중 군 장 : 이은찬 좌 군 장 : 방인관 우 군 장 : 권중희 유 격 장 : 김해진 좌선봉장 : 정봉준 우선봉장 : 김병화 후 군 장 : 채상준 운 량 관 : 현이보 재 무 관 : 신창광, 민춘원 좌총독장 : 김현복 우총독장 : 이귀성 진위대사령부 : 민긍호64) 이인영 등은 1907년 11월 15일자로 경고장을 원주진위대에 보냈다. 이어서 이인영은 ‘해외 동포에게 보내는 격문’을 국외 거주 동포들에게 보내어 의병 전쟁의 정당성을 천명하였다. 이들은 전국적인 연합의진을 결성하기 위하여 지평으로 이동하여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면서 전국 의병대와 연결을 취했다. 이인영은 각 지역 의병을 통합하여 ‘둑을 무너뜨릴 것 같은 기 세를 이루어 근기 지방으로 쳐들어가면 천하는 우리의 것이 될 수는 없더라도 한국 문제의 해결에 유리할 것’이라는 내용의 통문을 전국에 보내어 의병 부대의 연합을 강력히 촉구하였 다. 전국 각지에서 16개 의진이 합세한데 이어서 허위 부대 등도 합세하니 양주에 집결한 의 병은 모두 1만여 명에 달했다. 각도의 의병장들은 연합의진을 편성하여 13도창의대진소라 하고 이인영을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1908년 1월경 편제는 다음과 같다. 13도창의총대장 : 이인영 군 사 장 : 허 위 관동창의대장 : 민긍호 호서창의대장 : 이강년 6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자료』 8, 157쪽. 65) 『대한매일신보』 1909년 7월 30일. 중부 지역의 의병 전쟁과 의병장 <관동 창의군 지휘부> <연합 의진 지휘부> 교남창의대장 : 박정빈 진동창의대장 : 권중희 관서창의대장 : 방인관 관북창의대장 : 정봉준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