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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황해도를 넘나들면서 활동했다. 13도창의대진소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1908년 8월까지 활동하다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경북 선산 출신의 허위는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다. 그는 1907년 음력 9월경 김진묵과 왕회종 등에 의해 의병장에 추대되어 적성·삭령 등지에서 활동하였 다. 그후 그는 김규식과 연기우 등의 의병대와 합세하여 연합의진을 형성하였다. 허위는 경 기도 지역의 다른 의병대와 긴밀히 연계하면서 13도창의대진소를 구축하여 서울 진공 작전 을 주도하였다. 이 작전이 좌절된 후 그는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을 중심 무대로 항전을 지속 하였다. 그러나 1908년 6월 허위는 고향 친구의 밀고로 은신처인 경기 영평군 서면 유동에 서 체포되었다. 이은찬은 허위가 체포된 후 중국 만주 지역으로 거점을 이동하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 자 경기도 포천에서 의병을 재기하였다. 부대 명칭을 창의원수부라 하였는데, 선봉장에 김 귀손, 좌군장에 윤인순, 우군장에 정용대, 부장에 박순근·임운명·강기동·이준식, 참모에 이종협·윤대구·이주호·엄해윤, 군량장에 이계복, 종사에 이사인, 부관에 장수봉을 임명 하였다. 창의원수부는 1909년 2월 양주의 적석면 돌압산에서 일본 순사대와 조우하여 치열 한 공방전을 수행하여 격퇴하였다. 같은 해 3월에는 좌군장 윤인순이 수비대와 교전 중 전사 하였다. 이은찬은 만주로 망명할 계획을 수립하던 중에 밀정의 덫에 걸려 서울 용산에서 체 포되고 말았다. ② 강원 지역 1907년 8월 이후 강원 의병은 춘천과 원주 지역은 물론 홍천과 강릉·울진 등 각 지역에서 봉기하여 활발히 항쟁하였다. 이들 의병 부대는 춘천·원주·강릉 등을 서로 오가면서 활동 하였다. 강원도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중에 비교적 규모가 큰 부대로 연기우·김춘수·이종 협·김억석·조북동·채응언·유학근 등이 있다. 장기 항전을 주도한 의병으로는 김광옥· 최도환·정경태·연기우·강두필·김상태·이태영 의병 부대가 있으며, 일본군경과의 전 투횟수가 많았던 의병으로는 김광옥·최도환·유학근·이종협·김억석·조복동 부대가 두 드러졌다. 그중에서 김춘수는 강원도 홍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부하 200여 명을 데 리고 양평을 비롯한 광주·가평·홍천 등 경기도와 강원도를 넘나들면서 활동하였다. 그는 1908년 4월 가평과 홍천 등지에서 방곡령을 지시하면서 활동하다가 가평에서 체포되었다가 탈옥하여 다시 활동하다가 1909년 12월에 자수하였다. 4. 경기·강원 지역의 의병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