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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원용팔은 이 격문에서 일제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와 일진회의 매국행위를 폭로하였다. 또 일제가 고문정치를 자행하면서 매국관리들을 포섭하고 내정을 침탈하는 양상을 격렬한 어조 로 성토하였다. 그리하여 ‘제왕성현’의 한국이 ‘소일본’으로 전락하는 절대 절명의 위기상황 에서 항일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주살할 것을 호소하였다. 원주에서 거의한 원용팔은 곧바로 강원도, 충청도 각지에서 전력 확충에 들어갔다. 영월군 주천에서는 인근 각지에서 포군 수십 명을 모은 다음 다시 단양으로 행군하였다. 단양에서는 정운경(鄭雲慶)·이구영(李九永)·장익환(張益煥)·이규현(李奎顯)·지원영(池源永) 등 전기 의병 때의 동지나 지역 유지들의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단양은 일찍부터 향약 조직을 통해 포군을 두어 도적을 막았기 때문에 이들 포군 세력을 의병으로 흡수하여 전력을 보강할 수 있었다. 원주의병은 8월 26일에는 장졸 및 포군 30여 명과 종사 수십 명을 거느리고 영춘군으로 들어갔으며, 이곳에서 다시 외촌(外村)의 포군 10여 명을 모집한 뒤 이청(吏廳)에서 하룻밤 을 유숙하였다. 이로써 영춘 지역에서 의진의 규모가 수백 명에 이르게 되자 정운경은 다음 과 같이 의진을 편제하였다. 전 군 장 : 이정의 수 성 장 : 이회승 소 모 장 : 오두갑, 유해붕, 조준원, 남필원, 엄태간 파 수 장 : 조윤식, 김순익 참모종사 : 김태관, 채경묵, 엄성하, 엄기섭, 정대억, 지규창, 지병언 서 기 : 장지환, 홍범식 원주의병은 이처럼 원주·제천·영춘 등지의 유생들로 전기 의병에서 활동한 다수의 인물 들도 확인된다. 전군장 이정의, 소모장 남필원, 참모종사 엄성하, 서기 장지환 등은 제천의 병에서 활동한 인사들이었다. 일부 군인·서리 출신들로 보이는 인사들도 기용되었으며, 또 군전이나 군량·무기 등의 군수품을 지원한 인사들도 있었다.54) 원용팔 의병은 영춘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뒤 영월로 이동하였다. 영월에서는 보덕사의 승 54) 권영배, 「구한말 원용팔의 의병항쟁」,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우송조동걸선생정년기념논총 2, 나남출판, 1997, 230∼231쪽. 4. 경기·강원 지역의 의병 활동 <원주 의병 지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