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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우군장 : 이병년, 이범구, 홍순대 소모장 : 지우범, 박두표, 최상집 신석휴, 김윤식 소모관 : 이만직 수문장 : 최선재 수성장 : 조병순 홍주의병은 홍주성 전투에서 채광묵 등 3백여 명이 전사하는 등 희생이 컸던 의병이다. 체 포된 포로 중에서 서울로 압송된 인물이 78명이다. 이들 중에 민종식을 비롯하여 안병찬· 곽한일·이용규 등의 행적을 살펴보기로 한다. 민종식(閔宗植, 1861∼1917)은 경기도 여주에서 판서 민영상(閔泳商)의 장남으로 태어나 1882년(고종 19)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1895년 을미사변 후 벼슬을 버리고 충청남도 청양의 정산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늑결되 자 항일운동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그는 의병장에 추대되어 1906년 3월 15일(음력, 2월 21일) 광수장터(지금의 예산군 광시면)에서 의병을 봉기하였다. 대장단을 세워 천제를 올리 고 이튿날 바로 홍주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관군의 저항에 오히려 대장소마저 위태롭게 되 어 다시 마을 밖으로 나와 진을 쳤다. 의병은 화성의 합천 전투에서도 관군과 일본군의 공격 에 패산하였다. 민종식은 각지를 잠행하다가 5월 9일(음력, 4월 16일) 충청남도 홍산군 지티 에서 의병을 재기하였다. 민종식은 의병을 이끌고 서천, 비인, 남포를 거쳐 홍주에 도착하여 홍주성을 점령하였다. 홍주성에서 패주한 일본군이 공주 병력을 지원 받아 20일부터 홍주성 을 둘러싸고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의병부대가 이를 격퇴하였다. 몇 차례의 일본 경찰과 헌병 대의 공격에도 전세가 의병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통감 이토는 주차군 사령관에게 군대 파 견을 명령하였다. 사령관 하세가와의 명령을 받은 보병 제60연대의 대대장 다나카(田中) 소 좌는 보병 2개 중대와 기병 반개 소대 그리고 전주 수비대 1개 소대를 거느리고 30일 홍주성 을 포위하여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전투에서 홍주성은 일본군에 의해 완전히 장악 되었으며, 참모장 채광묵 부자와 운량관 성재평과 전태진·서기환·전경호를 비롯하여 300 여 명이 학살되었다. 민종식은 성을 빠져나와 예산 이남규의 집에서 재기를 도모하였다. 민 3. 충청 지역의 의병 활동 참 모 : 안병찬, 박창로, 안항식 신보균, 이용규 유병장 : 유준근 유병소향관 : 민정식 참모사 : 이식 돌격장 : 남계원(남규진), 안병림, 곽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