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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등 영남의 유림들과 함께 일제의 침략과 조선의 애족장을 호소하는 장서(長書)를 작성하여 서명한 후 이를 파리의 강화회의에 발송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 파리장서운동이 발 각되어 그해 7월 공주 감옥에 구속되어 7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불온문서 서명배포’죄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제자들에게 한학을 교육하면서 유교부식회의 설 립을 지도하다가 1924년 3월 한 많은 생을 마쳤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28) 이설(李偰 , 1850∼1906)은 충청남도 결성군 화산면에서 태어났다. 1895년 10월 일제의 명 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김복한 등과 함께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1896년 1월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장60’의 판결을 받았으나 국왕의 특지로 석방되었다. 1904년에 일본이 전국의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자 분개하여 전국에 격문을 돌리어 이를 반대하고 민 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국왕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이에 항거하여 일제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일제 경찰 에 체포되어 한 때 투옥되었으나 석방되었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서 식음을 전폐한지 수십일 만에 1906년 4월 29일에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② 중기 의병장 중기의 충청의병으로는 1906년의 홍주의병이 있다. 의병장은 민종식으로 지휘부의 명단 을 보면 다음과 같다. 대 장 : 민종식 군사장 : 김상덕 참모장 : 김광우, 조희수, 채광묵 중군장 : 정재호, 황영수, 이세영 유격장 : 채경도, 김광현, 윤상배, 이만식 좌군장 : 윤필구, 윤병일, 송순묵 28) 김상기, 「김복한의 학통과 사상」, 『한국사연구』 88, 1995 ; 김상기, 「김복한의 홍주의병과 파리장서운동」, 『대동문화연구』 39, 2001. 중부 지역의 의병 전쟁과 의병장 <홍주 의병(중기) 지휘부> 후군장 : 정해두 서 기 : 문석환 운량관 : 성재두, 박제순 향 관 : 박윤식 좌익장 : 이상구, 김성진 우익장 : 신현두, 이봉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