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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일제가 구한국군을 강제 해산하자 이에 항거한 군인들과 의병이 서로 연합하여 대대적인 무장 항일전을 벌이게 되었다. 해산된 군인의 항전은 서울의 시위대로부터 시작되었다. 8월 1일 해산 조칙에 접한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朴昇煥) 참령은 비통함을 참지 못하 여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니 만번 죽어도 아깝겠는 가”(軍不能守國 臣不盡忠 萬死無惜)라는 유서를 남기고 권총으로 자결하였다. 이를 목격한 시위대 군인들은 무장하여 병영을 장악하고 일본군과 시가전을 감행하였다. 서울 시위대의 해산 거부와 항전 소식을 접한 원주·강화·홍주·진주·안동 등 지방의 진위대 병사들 역 시 대일 항전의 대열에 합세하였다. 이들은 각기 의병에 가담하여 의병 전력을 강화시켰다. 원주진위대는 특무장교 민긍호의 지휘 아래 병사층을 중심으로 거의하여 강원도와 충북 일 대에 본격적인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군대 해산 이후 후기 의병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 니 문경의 이강년 부대, 원주의 이은찬 부대, 영천의 정환직·정용기 부자의 산남의진, 영해 의 신돌석 부대, 호남의 기삼연·심남일·이석용·전해산·안계홍 부대, 충남의 정주원 부 대, 함경도의 홍범도·최덕준 부대 등은 특히 이름난 의병 부대다. 1907년 11월경에는 전국 연합의병의 성격을 갖는 13도창의군이 결성되어 서울 탈환 작전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중부 지역의 의병 전쟁과 의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