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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2월28일 화요일 2 (제122호) 창간 10주년 특집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저자 김부식(金富軾)은 신라본기 제1 시조 혁거세 거서간 조에서는 신라(新羅) 시조대왕(始祖大王) 의 탄생사실(誕生事實)을 천강(天降) 난생설(卵生說)로 써놓 고 신라(新羅) 56왕 992년을 편년체(編年體)로 신라본기(新羅 本 紀 ) 를 다 쓴 뒤 자 신 의 감 회 를 적 은 논 왈 (論 曰 ) 조 에 와 서 는 이천강(天降)난생설(卵生說)을부정하고있다. 『삼국사기 권 제12. 논왈(論曰) 조븣. 신라의 박씨븡석씨는 모 두 알에서 나왔고, 김씨는 황금 궤 속에 들어 하늘로부터 내려 왔다고 하며, 혹은 황금 수레를 타고 왔다고 하니 이는 너무 기 괴하여 믿을 수 없으나, 세속이 서로 전하여 사실이라고 한다. 정화(政和) 연간에 우리 조정에서는 상서(尙書) 이자량(李資 諒)을송나라에 보내어 조공했을 때,신(臣)부식(富軾)은 문필 의 임무를 띠고 같이 가서 우신관(佑神館)에 나아가 어떤 집에 여인선인상(仙人像)을모셔 둔 것을보았다. 사신을 접대하던 학사(學士) 왕보(王 빪)는 말했다. “이것은 귀국(貴國)의 신인데 공들은 이를 아십니까?” 마침내 말했다. “옛날 어떤 제왕의 집 딸이 있었는데, 남편이 없는데도 아이를 배어 남에게 의심을 받게 되자, 이에 바다를 건너 진한에 이르 러 아들을 낳으니 해동의 첫 임금이 되었으며, 제왕의 딸은 지 상의 신선이 되어 길이 선도산(仙桃山)에 있다는데, 이것은 그 선인의상입니다.” 부 식 (富 軾 )은 또 송 나 라 의 사 신 왕 양 (王 襄 ) 이 지 은 동 신 성 모(東神聖母)에게 제사 드리는 글에,‘현인을 낳아 나라를 처음 세웠다.’ 는 귀절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제사 동신(東神)이 곧 선 도산의 신성(神聖)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 아들이 어느 때 임금 노릇을한것인지는알수없다.』라고적고있다. 우리가 올바로 보아야 할 대목은 마지막 『그러나 그 아들이 어 느 때 임 금 노 릇 을 한 것 인 지 는 알 수 없 다 븣.』이 고 , 송 나 라 의 사신 왕양(王襄)이 지은 글을 두고 신라시조왕은 중국의 어느 제 왕 의 딸 파 소 가 낳 은 아 들 이 라 확 정 짓 는 것 은 다 시 한 번 생 각해보아야할문제라고조심스럽게거론해본다. 삼국사기 저자 김부식(金富軾)이 사신을 따라 송나라에 갔다 는 정화연간(政和年間) 은 송(宋)나라 휘종(徽宗)의 연호(年 號)로 A.D1111년에서 1117년까지를 말하며 저자 김부식(金富 軾)은 이때 송나라에 사신을 따라 들어갔고, 어떤 집에서 여인 (女人) 선인상(仙人像)을 보았는 학사(學士) 왕보(王 빪) 말 을 과연진실이라할수있을까? 왜냐하면,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新羅)시조대왕 (始祖大王)께서는 B.C 57년. 전한(前漢) 지절원년(地節元年) 임자(壬子)에 탄강(誕降)하셨으니, 김부식이 말한 정화연간 (A.D1111-1117년)과는 약 120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전한(前漢,기원전 206년-기원후 8년)과 송(宋,960년 -1279년 중국의 옛 왕조)나라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그 사 이 중국은 왕조(王朝)가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무엇 때문에 송 나라 우신관(佑神館)어떤 집에 여인 선인상(仙人像)을 모셔두 었겠느냐는의문이다. 그럼에도 왜 김부식의 주장(어느 때 임금인지 모른다.)을 왜 곡하여신라시조왕이라단정하고파소의아들이다하는지궁금 증을자아내지않을수없다. 물론 역사는 살아있는 권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이 있듯 신 라는망하고고려왕조가부각하였음을인지해볼만하다. 최근 숭덕전 전(前) 모(某) 참봉은 환단고기의 예를 들면서 시조 할아버지가 중국 황실의 따님 파소의 아들이라며 대대적 으로 홍보하고 모(某) 종친회에서는 후원금을 지원하며 이를 뒷받침하고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백과사전에 ‘1979년에 출간된 책으로 고대로부터전해지던역사서4권을묶은것이라자칭하고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학계는 위 서로 판단하여 역사서로 가치를 두지 않는다.’라고 기록하고 있 는바, 삼국사기 일부를 인용하여 신라시조왕은 중국황실의 따 님 파소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환단고기는 인정할 수 없음 또한 분명하다. 우리는 지난 2004년 오릉 앞에 일자제각을 지으면서 문화재 청에서 조선왕릉 앞에는 모두 정자제각이 있어 오릉 앞 제각 또 한 정자제각을 지어야 한다고 할 때 신라는 중국과 전혀 관련이 없다며 유일하게 일자제각을 지었던 것을 상고해 보았으면 한 다. 우리 역사에는 단군설화를 비롯한 많은 설화가 등장한다. 그 렇다면 이들 설화는 믿으면서 왜 우리 시조할아버지의 탄생설 화는믿지않는지우리스스로생각해보았으면한다. 만일 모든 설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단군 또한 믿지 못하는 일이고 일부 사람들의 주장처럼 우리 모두는 중국의 후예가 된 다는 뜻인데, 김부식도 신라시조왕이 전한(前漢) 지절원년(地 節元年) 임자(壬子)에 탄강(誕降)한 난생설을 기록하였듯 신 라시조왕의 탄생사실에 대해 더 이상 이견을 달지 말았으면 하 는간절한마음을담아본다. / 편 집자 주 (註 ) 신라(新羅) 시조대왕(始祖大王)께서 ①한 선제(漢 宣帝) ② 지절(地節) 원년(元年) 임자(壬子). 3월 초 1일 나정(蘿井)에 서탄강(誕降)하시다. <註> ①. 한 선제(漢宣帝) : 전한(前漢) 제9대효선제(孝宣帝). B.C 74-4 9년재위.이름은유순(劉詢). ②.지절(地節):효선제의연호.원년.임자년은B.C69년. (原文:新羅始祖大王.漢宣帝 地節元年.壬子.三月朔.誕降于蘿井.) ○이보다 앞서 조선의 백성들이 동해(東海)가에 산곡(山谷) 사 이 에 분 산 (分 散 ) 해 살 고 있 는 곳 이 여 섯 부 락 ( 部 落 )이 있 으 니, 一은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인데 지금의 담암사(曇巖寺) 촌장(村長)은 알평(謁平)이요. 二는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이니, 지금의 남산부(南山部) 촌장(村長)은 소벌도리(蘇伐都 利)요.三은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인데,지금의 장복부(長福 部) 또는 개차산(皆此山)이니, 촌장(村長)은 구례(俱禮)요. 四 는 취산진지촌( 치山珍支村)이니, 지금 통선부(通仙部) 촌장 (村長)은 지백호(智伯虎)요. 五는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이 니, 지금의 가덕부(加德部) 촌장(村長)은 지타(祗 )요 六은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니, 촌장(村長)은 호진(虎珍) 이니 이것이 진한(辰韓)의 육부장(六部長)이다. 그때 군주(君 主)가 없음을 한스럽게 여겨서 육부촌장(六部村長)이 알천(閼 川)에 모여 3일동안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祈禱)하니, 때 는 한선제(漢宣帝)지절원년(地節元年)임자(壬子)이다. 고허촌장(高墟村長) 소벌공(蘇伐公)이 양산(楊山) 나정(蘿 井) 숲속에 말 한필이 소리 높이 울고 오색(五色) 구름이 떠오 르는데 신선(神仙)이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히 생각 하여 가서 보니,말은간곳 없고 다만한 포태(胞胎)가 알(卵)처 럼 박 (瓠 ) 처 럼 생 긴 것 이 있 으 므 로 포 태 (胞 胎 ) 를 헤 처 보 니 , 어 린아이가 나왔는데 얼굴이 아름답고 단정(端正)하므로 받들어 모셔서 동천(東川)에 목욕시키니 몸에 찬란한 광채(光彩)가 나 고 새 와 짐 승 들 이 모 두 춤 을 추 니 , 육 촌 (六 村 ) 사 람 들 이 신 기 하 게태어났다하여받들어양육(養育)하였다. 진한(辰韓)말에 표주박을 「박(朴)」이라 하므로 성(姓)을 박 (朴)으로하고 빛나게 세상을 산다는 뜻으로 혁거세(赫居世)라 이름 하였다. 나이 13세에 의젓하고 숙성(夙成)하시므로 육부 (六部) 사람들이 추대(推戴)하여 왕(王)으로 모시니, 한선제 (漢宣帝) ①오봉(五鳳) 원년(元年). 갑자(甲子)이다. 거서간 (居西干:진한말로 왕의 존칭또는 귀인의 존칭)이라 일컫고 국 호(國號)는서라(徐羅)라하고후에신라(新羅)로고치다. <註>①오봉(五鳳):오봉은전한효선제의연호.원년.갑자년은B.C57년. (原文 : 先是. 朝鮮遺民, 分居東海濱山谷間. 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今曇 巖寺). 其長. 謁平. 二曰突山高墟村(今南山部).其長.蘇伐都利. 三曰茂山大樹 村(今長福部.一作皆此山).其長.俱禮.四曰金山珍支村(今通仙部).其長.智伯 虎. 五曰金山加利村(今加德部). 其長. 祗 . 六曰明活山高耶村(今臨川部). 其長. 虎珍. 是謂辰韓六部長. 其時. 悶無君長. 六村長. 俱會閼川. 三日齋沐禱 于天. 漢宣帝地節元年壬子. 高墟村長蘇伐公, 望楊山蘿井傍, 林間五色雲中, 有馬大嘶, 而如仙人 눠 拜之狀, 卽往觀之, 馬忽不見, 只有一胞, 如卵如瓠, 解 胞, 則始祖誕生. 儀形端美. 奉浴于東川, 身生光彩. 鳥獸率舞. 六村人, 以其生 神異, 奉而養之. 辰人之語, 謂瓠爲朴. 故以朴爲姓, 取赫赫然. 居當世之義, 以 赫居世. 三字爲諱. 年十三, 岐쳬 夙成, 六部人.推尊之. 立爲君. 漢宣帝五鳳元 年甲子也. 號居西干(辰人稱王之語. 或云貴人之稱). 國號徐羅. 其後改國號曰 新羅.) ※참고. 1. 신라에는 왕(王)을 거서간(居西干)이라 하신분이 한 분. 차차웅(次次雄) 이라 하신분이 한 분. 이사금(尼師今)이라 하신분이 열 여섯 분. 마립간(麻立 干)이라 하신분이 네 분. 왕(王)이라 하신분이 서른 네분이다. 그러나 신라말 최치원(崔致遠)이제왕연대역(帝王年代曆)을지으면서모두왕(王)이라한까 닭에삼국사기,삼국유사에서도모두왕(王)이라하였다. (삼국사기권제4,신라본기제4,지증마립간조). 1. 삼국사기 : 신라본기 제1. 시조(始祖) 혁거세(赫居世) 거서 간(居西干)조. 시조의 성은 박(朴)씨, 이름은 혁거세(赫居世)다. 전한(前 漢) 효선제(孝宣帝) 오봉(五鳳) 원년(B.C 57) 갑자. 4월. 병진 (일설에는 정월 15일이라 함)에 왕위(王位)에 오르니, 왕호(王 號)는 거서간(居西干)이다. 그때 나이는 열 세 살 이었다. 나라 이름을서라벌(徐羅伐)이라했다. 이보다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遺民)들이 여러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첫째를 알천양산 촌(閼川楊山村),둘째를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셋째를 취산 진지촌( 치山珍支村:혹은간진촌(干珍村)이라고도한다.),넷째 를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다섯째를 금산가리촌(金山加利 村), 여섯째를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라 했다. 이들이 후에 진한(辰韓)의 6부가 된다. 고허촌장 소벌공(蘇伐公)이 양 산(楊山)기슭 나정(蘿井)옆에 있는 숲 사이에 말이 무릎을 꿇 고 울고 있음을 바라보고 가 보니,문득 말은 볼 수 없고 다만 커 다란 알 하나만 있었다. 그것을 깨어 보니 갓난아기가 나왔다. 데려다 길렀는데,나이 여남은 살이 되자 기골이 준수하고 숙성 하였다. 6부 사람들은 그 출생이 신기하고 이상했으므로 그를 높이 받들고 존경했는데,이 때에 이르러 [그를]세워서 임금으 로삼았다. 진한 사람들은 표주박을 박(朴)이라 했는데, 처음에 큰 알이 표주박과 같았으므로 박으로 성을 삼았다. 거서간은 진한에서 는임금을말한다.(혹은귀한사람을부르는칭호라고도한다). (原文:始祖姓朴氏.諱赫居世.前漢孝宣帝五鳳元年甲子.四月丙辰(一曰正 月十五日). 卽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國號徐羅伐. 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 之間. 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山高墟村. 三曰치 山珍支村. (或云干珍 村) 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高耶村. 是爲辰韓六部. 高 墟村長蘇伐公.望楊山麓.蘿井傍林間.有馬눠 而嘶.則往觀之.忽不見馬.只有 大卵.剖之.有잤 兒出焉.則收而養之.及年十餘歲.岐쳬 然夙成.六部人以其生 神異推尊之. 至是立爲君焉. 辰人謂瓠爲朴. 以初大卵如瓠. 故以朴爲姓. 居西 干辰言王(或云呼貴人之稱). 2.삼국유사:신라시조(新羅始祖)혁거세왕(赫居世王)조. ①진한(辰韓)에는 옛날에 육촌(六村)이 있었다.一은 알천양 산촌(閼川楊山村)이니,남쪽의 지금 담암사(曇巖寺)방면이다. 촌장(村長)은 알평(謁平)이라하여 처음(하늘에서) 표암봉(瓢 옰峯)에 내려오니,이가 급량부(及梁部)이씨(李氏)의 조상(祖 上)이 되었다. (노례왕(弩禮王:유리왕(儒理王) 9년에 부(部)를 두어 급량(及梁)이라 하였는데, 고려태조 천복5년 경자(庚子) 에 중흥부(中興部)라 개칭(改稱)하였다. 파체(波替), 동산(東 山), 피상(彼上), 동촌(東村)이 이에 속한다). 二는 돌산고허촌 (突山高墟村)이니, 촌장(村長)은 소벌도리(蘇伐都利)라 하여 처음 형산(兄山)에 내려와 이가 사량부(沙梁部:량(梁)의 훈독 은 도(道)라 하고 혹은 탁이라고 쓰니 역시 도(道)라고 발음한 다.) 정씨(鄭氏)의 조상(祖上)이 되었는데, 지금은 남산부(南 山部)라 하여 구량벌(仇良伐),마등오(麻等烏),도북(道北),회 덕(廻德) 등 남촌(南村)이 이에 속한다. (금왈(今曰)이라고 한 것은 태조 때에 둔 것이니 아래도 마찬가지다.) 三은 무산대수 촌(茂山大樹村)이니, 촌장(村長)은 구(俱:구(仇)라고도 씀)례 마(禮馬)라 하여 처음 이산(伊山:개비산(皆比山)이라고도 함) 에 내려와 이가 점량(漸梁:량(梁)은 탁이라고도 씀)부(部), 혹 은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의 조상(祖上)이 되었는데, 지 금은 장복부(長福部)라 하여 박곡촌(朴谷村)등 서촌(西村)이 이에 속한다. 四는 취산진지촌( 치山珍支村:빈지(賓之) 또는 빈 자(賓子),빙지(氷之)라고도 함)이니,촌장(村長)은 지백호(智 伯虎)라 하여 처음 화산(花山)에 내려와 이가 본피부(本彼部) 최씨(崔氏)의 조상(祖上)이 되었는데, 지금은 통선부(通仙部) 라 하 여 시 파 (柴 巴 ) 등 동 남 촌 (東 南 村 )이 이 에 속 한 다 . 최 치 원 (崔致遠)은 본피부(本彼部)사람이다.지금 황룡사(黃龍寺)남 쪽과 매탄사(昧呑寺) 남쪽에 옛터가 있는데, 이것이 최후(崔 候)의 고택(古宅)이라 하니 분명하다.五는 금산가리촌(金山加 利村:지금 ②금강산(金剛山) 백율사(栢栗寺)의 북산(北山))이 니, 촌장(村長)은 지타(지타(只他)라고도 함)라 하여 처음 명 활산(明活山)에 내려와 이가 한기부(漢 댔部), 혹은 한기부(韓 댔部), 배씨(裵氏)의 조상(祖上)이 되었는데, 지금은 가덕부 (加德部)라 하여 상하서지(上下西知), 내아(乃兒)등 동촌(東 村)이 이에 속한다. 六은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니, 촌 장(村長)은 호진(虎珍)이라 하여 처음 금강산(金剛山)에 내려 와 이가 습비부(習比部) 설씨(薛氏)의 조상(祖上)이 되었다. 지금의 임천부(臨川部)이니, 물이촌(勿伊村)븡잉구미촌(仍仇 彌村)븡궐곡(闕谷:갈곡(葛谷)이라고도 함)등 동북촌(東北村) 이이에속한다. 상문(上文)을 보건데,이 육부(六部)의 조상(祖上)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다. ③노례왕(弩禮王, 유리왕) 9년에 비 로소 육부(六部)의 이름을 고치고, 또 육성(六姓)을 주었던 것 이다. 지금 풍속(風俗)에는 중흥부(中興部)를 어미, 장복부(長 福部)를 아비, 임천부(臨川部)를 아들, 가덕부(加德部)를 딸이 라하는데,④그이유는자세치않다. 전한(前漢) ⑤지절원년(地節元年) 임자(壬子:고본(古本)에 는 건무(建武)원년이라 하고 또는 건원(建元) 3년이라고도 하 나 모두 그릇된 것이다.) 3월 초 1일에 육부(六部)의 조상(祖 上)들이 각기 자제(子弟)들을 데리고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 여서 의논하되 “우리가 위에 백성을 다스릴 군주가 없어, 백성 들이모두방일하여제맘대로하니,어찌덕(德)있는사람을찾 아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치아니하랴.” 하고 이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아래 나정 (蘿井) 곁에 이상스러운 기운이 전광(電光)과 같이 땅에 비치 더니 거기에 백마(白馬)한 마리가 꿇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 고 있 었 다 . 그 곳 을 찾 아 가 보 니 한 붉 은 알 (혹 은 푸 른 , 큰 알 이 라 고도 한다.)이 있는데,말은 사람을 보고 길게 울다가 하늘로 올 라가버렸다.그알을 깨어보니모양이단정한아름다운동자(童 子)가 나왔다.기이함에 놀라 그 아이를 동천(東泉)에서 목욕시 키니,몸에서광채(光彩)가나고,새와짐승이따라춤추며천지 (天地)가 진동(振動)하고 일월(日月)이 청명(淸明)한지라. 인 (因)하여 그를 혁거세왕(赫居世王)이라 이름하였다. (아마 향 언(鄕言)일 것이다.혹은 불구내왕(弗矩內王)이라고도 하니 밝 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설자(說者)는 이르되 이는 ⑥ 서술성모(西述聖母)의 탄생(誕生)한 것이니 중국(中國) 사람 들이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찬양(讚揚)하여 신현조방(娠賢肇 邦:어진사람을 낳아 나라를 시작하다.)이란 말이 있는 것도 이 까닭이라 하였다. (그러고 보면) 계룡이 상서를 나타내고 알영 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서술성모의 현신을 말한 것이 아닐까). 위호(位號)를 거슬감(居瑟邯:혹은 거서간(居西干)이라고도 하 니, 이는 그가 처음 입을 열때 스스로 말하기를「알지거서간(閼 智居西干)이 한 번 일어난다.」하였으므로 그 말로 인해서 일컬 었는데,이로부터왕자(王者)의존칭이되었다.)이라하였다. 삼국유사번역자주 ①.진한(辰韓):사로(斯盧)라고해야할것이다. ②.금강산(金剛山):경주북쪽의금강산. ③.노례왕(弩禮王):사기에는유리이사금으로되어있다. ④. 그이유는자세치않다: 찬자는모른다고하였으나, 이는매우흥미있 는기사로본다. 마치후세촌락의「두레」와「두레」사이에탄생의선후를따 져「스승두레」븡「제자두레」,혹은「형두레」븡「아우두레」의구별이있는것과 같은것이라하겠다. ⑤.지절(地節):한선제(漢宣帝)의연호. ⑥.서술성모(西述聖母):서술성모에관하여는제5권선도성모조에자세 히보인다. <註>㉠.설자(說者):삼국사기저자김부식을일컬음.김부식은신라56왕 992년을 편년체로 다 쓰고 자신의 감회를 밝힌 논왈(論曰) 조에서 그가 송나 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어느 집에서 선인상(仙人像)을 보았다며 서술성모에 관하여자세히기록하고있음. (原文 : 辰韓之地, 古有六村. 一曰. 閼川楊山村. 南今曇巖寺. 長曰謁平. 初 降于瓢 옰 峰.是爲及梁部李氏祖.(弩禮王九年置.名及梁部.本朝太祖天福五年 庚子.改名中興部.波替東山彼上東村屬焉).二曰,突山高墟村.長曰蘇伐都利. 初降于兄山. 是爲沙梁部(梁讀云道. 或作 . 亦音道). 鄭氏祖. 今曰南山部. 仇良伐, 麻等烏, 道北, 廻德等. 南村屬焉. (稱今曰者, 太祖所置也. 下例知). 三 曰, 茂山大樹村. 長曰俱(一作仇)禮馬. 初降于伊山(一作皆比山). 是爲漸梁(一 作 )部, 又牟梁部孫氏之祖.今云長福部.朴谷村等.西屬焉.四曰,치 山珍支村 (一作賓之又賓子. 又氷之). 長曰智伯虎. 初降于花山. 是爲彼部崔氏祖. 今曰 通仙部.柴巴等.東南村屬焉.致遠乃本彼部人也.今皇龍寺南.味呑寺南.有古 墟.云是崔候古宅也,殆明矣.五曰,金山加利村(今金剛山栢栗寺之北山也).長 曰祗 .(一作只他). 初降于明活山. 是爲漢댔 部, 又作韓댔 部. 裵氏祖. 今云加 德部. 上下西知, 乃兒等. 東村屬焉. 六曰, 明活山高耶村. 長曰虎珍. 初降于金 剛山.是爲習比部薛氏祖.今臨川部.勿伊村,仍仇彌村.閼谷(一作葛谷).等.東 北村屬焉.按上文.此六部之祖,似皆從天而降.弩禮王九年,始改六部名,又賜 六姓.今俗中興部爲母.長福部爲父.臨川部爲子.加德部爲女.其實未詳.前漢 地節元年壬子(古本云,建武元年.又云建元三年等.皆誤).三月朔,六部祖各率 子弟, 俱會於閼川岸上. 議曰. 我輩. 上無君主. 臨理蒸民. 民皆放逸. 自從所欲. 覓有德人, 爲之君主, 立邦設都乎. 於是乘高南望. 楊山下蘿井傍, 異氣如電 光垂地. 有一白馬눠 拜之狀. 尋괴 之. 有一紫卵(一云靑大卵). 馬見人長嘶上天. 剖其卵得童男.形儀端美.驚異之.浴於東泉(東泉寺在詞腦野北).身生光彩.鳥 獸率舞. 天地振動. 日月淸明. 因名赫居世王(盖鄕言也. 或作. 弗矩內王. 言光 明理世也. 說者云. 是西述聖母之所誕也. 故中華人讚. 仙桃聖母. 有娠賢肇邦 之語是也. 乃至鷄龍現瑞産閼英. 又焉知非西述聖母之所現耶). 位號曰居瑟邯 (或作居西干. 初開口之時, 自稱云, 閼智居西干, 一起. 因其言稱之. 自後爲王 者之尊稱)븣. 시조대왕 (始祖大王) 탄강사실 (誕降事實) 지난 2002년부터2005년까지네차례의발굴조사결과 팔각건물지(300.27㎡)와부속건물지,복랑형건물지,우물지,담장,명문기 와등이 발굴되면서역사적 사실을뒷받침해주었을뿐만 아니라시조대왕이 실존인물임을밝혀냈다. 신라천년사직의문을연박혁거세대왕의탄강에 대해 최근 前 숭덕전 某 참봉과 어느 단체에서 중 국황실 파소의딸이라 규정하고 난생설의탄강사 실을 부정하고, 모(某)학자는 심지어 시조대왕의 아버지(파소의 남편)의 이름 석자를 알고 있다며 공공연하게 떠들어 대고 다니고 있어 개탄하지 않 을수없다. 특 히 종 중 의 지 도 자 라 할 수 있 는 분 들 이 지 은 성 모사중건기등각종기록물에도김부식의삼국사 기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데서 부끄러움을 감출수없다. 이에그동안수차에걸쳐시조대왕의탄강사실을 게재하였으나 창간 10주년을 맞아 이해를 돕기 위해시조대왕탄강사실을실어본다. 뱚 삼국사기의저자김부식의주장 뱚 김부식의주장에대한허구 뱚 환단고기에서주장 뱚 결론 뱚1.시조대왕(始祖大王)탄강(誕降) 뱚2.탄강사실(誕降事實) 경주에서개최되는신라문화재에시조왕의탄강사실을묘사한 조형물을만 들어행진을하고있다. 뱚사서고증(史書考證)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