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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당 박소(忍堂 朴昭)(1347, 고려 충목왕 3∼1426, 세종 8)선생은 송은 선생의 둘째 아들로서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서 출생했다. 포은 문인으로 이학(理學)을 전수(專修)하였으며, 스스로 경계하는 글을 지어 충신효제(忠信孝悌)를 좌표로 삼았다. 후에 사포리에서 초동면 검암리 모선동으로 이거하였는데 이는 변춘당, 변 춘정 양선생과 같은 마을에서 이학(理學)을 강마( 講磨)하고 소요자적을 지 락(至樂)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향당의 장로(長老)와 계(契)를 조직하여 춘추로 강회(講會)를 열 어 덕업상권 과실상규(德 業相勸 過失相規)를 요강 삼아 향풍(鄕風) 진흥에 힘썼는데, 이 계가 구령동안(龜令洞案)으로, 뒷날 점필재 선생이 이 안에 의준하여 이름하기를 밀주 향약(密州鄕約)이라 하였다. 태종조에 생원 등과하고 안음 현감 재임시에 백형 우당 융(憂 堂 融), 아당 조(啞堂 調), 졸당 총(拙堂 聰) 등과 함께 동헌에서 시를 읊고 화답하니 세인이 사우(사주)당(四友(四珠)堂)이라 칭하였으 며, 안음현감 때의 청백한 치적으로 안의읍 풍광루 부근에 청백선정비(淸白善政碑)가 세워졌다. 두문동 72현의 한 분으로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과 우당(憂堂)·인당(忍堂)·아당( 啞堂)·졸당(拙堂), 즉 四 堂의 학문과 선정과 청백 이 지금도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어 후인들의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들은 과거를 잃은 방랑자가 되어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눈 앞 의 이해 관계에 얽매여 살 아가는 우리들은 이분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재발견하고 정신적 삶의 지주와 방향 감각을 되찾아야 되지 않 겠는가. • 47송은 선생의 화상운(畵像韻)을 지은 포은 정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