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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문신으로 청도에 터전을 잡아 밀양 박씨의 송은 박익(1332∼1398)과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후손14의사의 충 절을 기리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충열사와 1 4의사 묘정비가 있다. 고려 때 예부시랑, 중서령 등의 벼슬을 지내고 여러 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는 공을 세웠던 박익 선생은 조선이 개 국되자 벼슬을 사양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14의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밀양·청도·경산 등지에서 크게 활약한 밀양 박씨 가문 의 14분으로 모두 부자, 형제, 사촌 등의 친척들이다. 이들 가운데 11분은 선무원종공신1·2·3등에 각각 봉해지고 한 분은 병자호란 때 1등 공신이 되었는데, 다른 가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청도에 세거해 온 밀양박씨(密陽朴氏) 일문이 그 현조(懸祖)인 충숙공 박익(忠肅公 朴翊)과 임 란(壬亂) 14의사를 제향 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용강서원(龍岡書院)이다. 경내에 있는 충열사는 임진왜란( 壬辰倭亂)(1592-1598)때 의병을 일으켜 청도·밀양·경산 등지에 큰 타격을 준 박경신(朴慶新)·경인(慶因)·경전(慶傳)·경윤(慶胤)·경선(慶 宣)·지남(智男)·철남(哲男)·선(瑄)·찬(璨)·린(璘)·우(瑀)·근(瑾)·숙(琡)·구(球) 등 14의사 를 모신 사당이다. 14의 사는 부자, 형제, 숙질, 종형제 사이로 이 가운데 11분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2·3 등에 각각 등재되었고, 한 분은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이러한 경우는 타가문에 찾기 어려운 매우 희귀한 예라 하겠다. 14의사 묘정비는 1876년 건립한 것으로 임란 당시의 상황을 매우 상 세하게 기술하고 있으 • 44밀양 박씨의 송은 박익과 임진왜란 14의사의 충절기리는 용강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