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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92 청산리전투에서대승한대한독립군의기념사진 일본군은한국독립군을궤 멸시키기위해대대적토 벌작전을단행하였다.이 에한국독립군들은일본 군의추격을따돌리기위 해노령(露領)지역으로이 주하여,1921년6월한국 독립군의주력부대들이 자유시(알렉세예프스크) 에도착하게된다.자유 시에서집결한한인독립군부대는단일의부대가아니고러시 아출생한인2세들의이르크츠크파계열의군대,간도에서활동 한대한독립군,그리고블라디보스톡의신한촌을근거지로초기 사회주의운동을이끌고있던이동휘(李東輝)계열의사할린의용대 등,3계열의한인독립군부대들이었다.따라서이들각독립군 부대는한인독립군부대전체의군통수권을두고서로세력다 툼을전개하였다.이과정에서발생한사건이자유시사변(自由市 事變)이다.이사건으로많은독립군들이희생되었는데사건의 전모는대략다음과같다. 봉오동전투와청산리전투이후일본군추격을피해서노령(露 領)으로이동하던대한독립군은밀산(密山)에서독립군을통합․ 재편성하여대한독립군단을조직하고지리적으로더욱안전한 연해주의이만(달네레첸스크)에집결하였다.이때연해주에있던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의문창범(文昌範)과자유대대(自由大隊)의 오하묵(吳夏黙)등은자유시에군대주둔지를마련하여한인독립 군에게집결할것을권하였다.이에1921년1월중순부터3월중 순사이간도지역독립부대인최진동(崔振東)등의총군부(總軍 府),안무(安武)등의국민회군(國民會軍),홍범도(洪範圖)등의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