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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88 11.이봉우(李鳳雨) 이봉우는1873년7월15일부산좌천동에서출생하였다.호 (號)는백단(白旦).본관은경주(慶州).이명(異名)은봉우(奉雨)이 다.이봉우는정작독립운동에큰족적을남겼음에도불구하고 잘알려져있지않은인물이다.어려서한학을배우고성장하면 서신학문과일본어를이수하여한말궁내부기사(宮內府技師)로 재직하였다.이무렵이봉우는이승만(李承晩)을비롯한우국지 사들과교유하면서위기에처한국가를구출하기위한국정(國 政)에전념하였다.그러나이봉우가궁내부기사로있을무렵국 내외상황은급박하게돌아가고있었다.1904년러일전쟁을시작 으로한반도에서영향력을확대한일본은전쟁을유리한국면으 로이끌면서한일의정서(1904.2)와한일협약(1904.8)을체결하고 마침내1905년11월을사늑약을통해서통감정치를실시하였다. 이봉우는이러한일제의침략에분개하여관직을그만두게된 다.이후고향으로내려와부모를봉양하면서어떻게하는것이 나라를위하는것인지자신의고민을부친이종만(李鍾晩)과상 의하였다.이때부친은이봉우에게나라를위하는것이라면어떤 것든지지원하겠다는격려의말을해주었다.이에이봉우는1908 년만주로가서독립운동의근거지가될수있는연길현합마당 (哈蟆塘)에정착하였다.이후이봉우는인재양성을위해동포들 이거주하는여러곳에민족학교와강습소등을설립하여민족 정신을고취시켰다.당시만주에살고있던동포들은대개한반 도에서살기어려워만주로이주해온만큼경제적으로매우어 려운처지에있었다.따라서자라나는자식들에게신식교육을시 킨다는것은여간어려운일이아니었다.더구나학교설립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