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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진 87 윤현진장례식중앙에안창호,김구,여운형이젊은 독립운동가의넋을기리고있다 으로확산되었고,특히 부산에서도姜永祚(예수 敎人)朴甲善(예수敎人) 女信徒朴德述외10명 이상해임시정부의독 립운동을원조할목적 으로선전과군자금모 집을하던중검거되는 사건이일어났다. 2여년간임시정부활 동을하던현진은1921년9월19일별세하였다.그는죽기전 「獨立하지못하면我骨을故山에묻지말며我子女를嫁치말 라」고遺言하였다.장례는임시정부의국장으로치러졌고,안창호, 김구,여운형등이참석해애도했다.뒤늦게도착한현태는동생 의죽음을슬퍼하면서현진의묘소에‘윤현진묻음’이라쓴비석 을세웠다. 일제강점기민족이위기에빠졌으나,위기로부터목숨과맞바 꾸어민족을구하려던사람들은적었다.우산윤현진은민족독립 이라는삶의목표를정해,어린시절유학생활,귀국후경남은행 근무,3.1운동이후상해임시정부의국무위원으로서의활동을통 해이과제를실현하려는노력으로살았다. ▣부경역사연구소연구원차철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