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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70 평소에구상해오던국외해방운동기지개척을실행하고자중국 으로망명하여발해의고도인동경성에서발해농장경영에착수 하였다.그는경북봉화금정광산개발로많은돈을번김태원 (金台原)의도움으로토지를매입하고개간하여조선의남부지방 실농민3백여호를이곳으로옮겨자작농제를시행하여정착시킨 후발해보통학교도설립하여교장이되고이들에게민족정신과 자주독립사상을고취시켰다.발해농장은표면적으로는농지개간 사업을하는농장이었으나사실은국외해방운동기지였다.1934년 안희제는민족종교인대종교총본사가이곳동경성으로옮겨지 자,동교의3세교주윤세복을비롯한간부들을대동청년단에가 입시키는한편대종교활동을본격적으로벌리게된다.즉그는 1933년3월15일대종교영계를지수하고,1935년1월15일동교 의참교에피선,1936년6월23일지교와경의원부원장,대종교 서적간행회회장으로특임되어《홍익규제(弘範規制)》,《신단 실기(神檀實記)》등8가지의책을편찬했으며,또해마다4차례 교보도간행했다.1941년정월상교로승질되고총본사전강을 맡게된그는1942년4월신병치료를위해일시귀향했다가그 해발해고도지에천전건축이추진될때주비회총무부장을맡 아동분서주하면서대종교교세의확장운동에진력하였다.그러 자일제는대종교의활동이민족의식고취와해방운동세력확장 으로연결될것에위협을느껴1942년11월19일국내외의대종 교간부들을체포하고탄압하기시작했다.그결과당시21명의 대종교간부가체포된소위임오교변이발발하고그중10명이 순국하였다.안희제도일경에의해투옥되고혹독한고문을당한 후1943년8월4일(음력)병보석으로출감된뒤동생안영제가 그곳영안현에서경영하던영제의원에서3시간만에59세를일기로 순국하고말았다. 이상에서살펴본바와같이안희제는1900년대부터194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