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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69 합과의연락기관으로1928년4월경성에서설립된협동조합경리 조합의이사장에취임하여활동했으며,자력사라는잡지사도경 영하면서,《자력(自力)》이라는월간잡지를발행하였다.안희제가 협동조합운동에참여한것은1920년대전반기실력양성운동을 민족자립경제건설과근로대중의실력양성으로연결하고자했던 그의민족해방운동노선(비타협적민족주의노선)이한단계더 심화된것이기도하고,협동조합운동이1927년의신간회운동과 연관속에서전개되었다는점에서볼때,자신의특기인경제운 동을통해정치운동인신간회운동을지원하고자했던것으로이 해될수있을것이다.협동조합운동사는조선의민족운동이협동 조합이라는경제운동으로부터시작하여정치운동으로나아갈수 있다고주장하면서1926년5월재일유학생들이동경에서조직 한것으로1928년4월본부를동경에서서울로이전,활발한활 동을벌였으나일제의거듭된탄압으로1931년무력해산되어 버렸다.또한그는1921년11월25일이우식(李祐植)을비롯한 여러유지들과함께《시대일보》를인수하고《중외일보》로 개칭하여경영하다가필화사건으로총독부로부터무기정간처분 을받은후1929년9월1일복간하여사장으로취임하면서당시 로서는최초로조석간4면씩하루에8면을발행하는의욕을보 였다.이로서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와치열한경쟁을벌리다가 결국재력부족으로1931년6월19일종간호를낸후중외일보 는종간되었다.그후노정일(盧正一)이이를인수《중앙일보》 로개제하여발행할때고문으로추대되었다. 대종교에서의 활동 안희제는1930년대미증유의대수해로수많은사람들이굶주 림에시달리자「전조선수재구조회」를조직하여수재민을구제 하는일에헌신한후국내에서의활동을청산하고1931년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