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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68 감시와주목을받게되었다.안희제는1919년8월백산무역주식 회사외에자본금10만원으로송대관(宋大觀),김종범(金種範)등 과조선주및누룩을제조판매하는조선주조주식회사를부산 수정동에설립운영하였으며,동회사는1928년백산무역주식회사 가해산된다음해에역시해산되었다.1916년5월에설립된경남 인쇄주식회사의설립에도관여하는등부산지역의기업설립운동 에핵심적인역할을수행하였으며,1926년4월에서1928년3월까 지부산상업회의소부회두를지내기도했다.그리고안희제는 1927년1월경조선인의경제적파멸에대한대책을강구하는기 관으로《경제운동》이란월간잡지를창간하려고시도했다.이처 럼안희제는부산경남지역에서경제적실력양성운동을주도하 고실천하였다.한편그는1919년11월백산상회관계자들을중 심으로한부산및인근지방유지들을발기인으로참가시켜장 차해방운동에필요한인재양성을목적으로기미육영회를조직 하여국내및국외에유학시킬우수한청년들을선발하였다.뿐 만아니라안희제는1919년12월부산예월회를조직하여민족자 본가들의결속을다지는한편민립대학설립운동의발기인으로 각학교의설립및확장운동,교육산업개선청원운동,조선인자 본가를위한특수금융기관설치운동등에진력하는등부산지역 의사회운동과민족자본육성에노력하였다.그리고그는언론활 동에도큰관심을가지고1920년봄동아일보발기인에참여했 으며,동아일보부산지국장을1921년6월까지역임함과동시에 1920년대부산지역민족운동의구심체였던부산청년회를지원하 고재무부간사로도활동하였다.이처럼안희제는1920년대전반 의부산지역문화운동의선도적역할을수행한후1928년활동 무대를서울로옮겨당시기미육영회를통해일본에유학한전 진한(錢鎭漢)을비롯한이시목(李時穆),함상훈(咸常勳)등이이끌 었던협동조합운동사에참가하고,동사의본부와각지방협동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