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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56 거사의주인공인박재혁이부산출신으로,일본식근대교육을 받은지식인이라는데서조선을일본에동화시키려는조선총독부의 정책에회의를나타내기도했다.이렇게박재혁의거사는일제 통치자에게는충격과공포를안겨주고,한국인에게는폭력적통치 아래서도꺾이지않는독립에대한열망을재확인시킨사건이었다. 그러나폭탄을투척하는과정에서박재혁역시부상을당하였 으며,이때문에박재혁은현장에서일본경찰에체포되고말았 다.최천택을비롯하여박재혁의거사를도왔던부산의청년계도 곤욕을치렀는데,특히박재혁이중국에서들여온폭탄을숨겨 주었던오택(최천택이라는이야기도있음)은박재혁과함께대구 에서옥고를치러야만했다. 박재혁의체포소식을전해들은김원봉은자신의특별한당부 가살아돌아올수도있었던박재혁을죽게만들었다며장탄식 을했다고한다.김원봉은부산경찰서장을죽이되,그냥죽이지 말고반드시의열단의복수임을밝히고죄를추궁할것을지시 하였던것이다. 하지만돌이켜보면박재혁은처음부터거사를성사시키는데 마음이있었을뿐이미생사를초월했던듯하다.애초에부산경 찰서의서장실에서,서장의지척에서거사를꾀한것자체가대 담함과더불어자신의안위를돌보지않는헌신성을보여주고 있기때문이다. 이는일본나가사키에서부산으로출발하면서상하이의동지 에게띄운서신에도잘나타나있다.엽서에서박재혁은“不可期 再見君顔”(당신의얼굴을다시보기는어려울듯합니다)라고하 여,거사를앞둔비장한결의를다지고있는것이다. 폭탄으로인한상처와혹독한고문,부산지방법원과대구복심 법원에서다시경성고등법원으로이어진재판의끝에서,예상대로 박재혁은사형을언도받았다.그러나죽음의공포조차박재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