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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 53 적투지가다시금불타고있었던것이다.의열단단장김원봉으 로부터연락이온것은바로이즈음이었다. 이에앞서박재혁은1920년3월무렵에중국에서귀국하였는 데,이시기는‘밀양폭탄사건’이실행되기시작한때이다. 밀양의의거가실패로끝난후김원봉은새로운투쟁을실천 하기위하여박재혁을선택하고결단을요청하였다.일찍이홀어 머니와어린여동생을부양하기위해항일투쟁의의지를접은 바있는박재혁은또다시망설이지않을수없었을것이나,결국 가슴속의외침에귀를기울여독립운동의한길에몸을던지기로 결심하였다. 이과정에는부산상업학교시절에함께구세단활동을하였던 김병태가어떤형태로든영향을미쳤을것으로짐작된다.김병태 는중국으로가서의열단에입단한후의열단활동은물론,김원 봉이창당한민족혁명당에서김원봉의비서로활약하고,한국광 복군에서활동하는등줄곧김원봉과행동을같이하였기때문 이다.1920년8월상하이에서김원봉을만나의열단에입단하고 거사의지를다진박재혁이다음달인9월에국내로잠입하여부 산경찰서에폭탄을투척할때,이를도와결행케한것도다름 아닌김병태였다. 무척어려운결정이었지만일단결심한이상,박재혁은자신의 용기와경험을총동원하여거사를계획하였다.시가지한복판에 서,그것도부산경찰서의서장을처단한다는것은사실보통사 람으로는생각조차어려운일이었던만큼이를성공시키기위해 서는특별한지략이필요하였기때문이다. 먼저일제의눈을피해입국하는것부터가문제였다.이를위해 박재혁은기차를타고압록강을건너는육로를택하지않고,중국 남해안에서일본나가사키[長崎]를거쳐부산으로가는배편을 이용하였다.압록강을건너는방법은편리하지만일본경찰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