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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 51 함께우리나라역사를서술한서적,즉『동국역사』를등사기 로찍어부산상고,동래고보,부산진일신여학교등시내주요학 교와학생들에게배포하였던것이다. 이시기는일제가조선을강제병합한직후로서조선의학문 서적을강탈하고,특히조선역사에대한연구와교육을탄압하 던시기였다.따라서이때우리나라역사서를배포한다는것은 그자체가일제통치정책에대한저항이었던것이다.결국일제 경찰에발각되어널리배포되지는못했지만,일제강점초기에 있었던『동국역사』의배포사건은부산의학생및청년층에 상당한파장을미쳤을것으로여겨진다. 나아가이듬해인1913년박재혁은최천택을중심으로김병태, 박흥규,왕치덕,조영상,오택등과더불어구세단을결성하였다. ‘구세단(救世團)’이란일본제국주의와맞서싸워나라를구하자 는뜻에서붙인이름이었다.이들은구세단단보를발행하여부 산․경남일대의항일애국자들에게배포하는것을계기로동지 를규합하는활동을전개하였다. 일제는강점초기에친일단체를제외한모든한국인단체를 탄압하였으므로일제에항거하는한국인들은비밀결사를조직했다. 1909년백산안희제를중심으로영남지역의청년지식인들이결 성한‘대동청년단’을비롯하여,1915년에결성된‘조선국권회복단’ 과같은것은대표적인비밀결사조직이었다.그에비해구세단 은소규모결사였지만부산에서는근대적인교육을받은첫세 대들의활동이라는점에서,부산의청년운동에중요한의미를가지 는것이었다. 구세단활동으로인해박재혁등구세단의주요인물들은일 제에검거되어혹독한고문을당하고이후일제경찰의감시를 받는요시찰인물이되어핍박을받았다.그러나이과정에서박 재혁은일제의야수적폭력성을경험하면서강렬한민족의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