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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출 47 묘지부산시기장군기장읍연화리연화봉 박영출은또‘조선의공산화를목적으로적색노동조합을조직 하려하였는가’라는질문에대하여,자기는이재유,이관술과조 선의객관적정세에대해이야기한일은있으나조선의공산화 만을목적으로하여활동하지는않았다고부인하였다.그는모든 구성원이능력에따라일하고필요에따라분배받을수있는공 산제사회의실현을희망하지만,이를위해서는먼저조선을지배 하고있는일본제국주의로부터우리민족을해방시켜민족특유 의문화발전을꾀하고,조선의독립과함께사유재산제를부인 하여공산제사회를수립하는것이자기의임무라고확신한다고하 였다. 박영출은1936년7월30일징역4년형을받았다.동지10명가 운데공성회(孔成檜)만징역1년6개월에집행유예3년을받았 고,나머지9명은최고4년부터최하1년6개월의징역형을선고 받았다.박영출은대전형무소에서옥고를치르던중고문과옥고 의여독으로1938년8월31세의젊은나이로순국하였다.그의 묘소는기장읍연화리연화봉자락에있다. 정부는그의공훈을기려1977년에건국포장,1990년에건국훈장 애국장을추서하였으며,그의공적을후세에널리알리고잊지 않기위해1984년10월그의무덤옆에추모비석을건립하였다. 동래고등학교는1978년3월 20일모교에서졸업식을열 어미망인김소애여사에 게명예졸업장을전달했다. 실로52년만에받은졸업 장이었다. 이처럼박영출은31년의 짧은삶을불꽃처럼살다 갔다.죽는날까지그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