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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법린 29 특히그는불교를혁신하고항일독립운동의선봉에나설방도 를모색하던차에1930년5월김상호(金尙昊),이용조(李龍祚), 조학유(曺學乳)등과만나불교계비밀결사인만당을발기하고, 박창두(朴昌斗),허영호(許永鎬),김범부,최범술,조은택등의청 년승려들을규합하여‘만당’을창당했다.이들은민족의지도자 한용운을만당의당수로추대하고,정치와종교분리,불교행정 확립,불교대중화를강령으로하여활동하였다. 만당결성이후김법린은일본에유학가고마자와[駒澤]대학 에서범어와인도철학을공부하는향학열을불태웠다.여기서그 는1930년8월에만당의동경지부책임을맡아,최범술,허영호, 장도환등의만당당원과함께활동했다.김법린이일본에서유 학하고있을때조선에서는조선불교청년동맹이조직되었다.이 것은비밀결사인만당을은폐하기위해내세운표면단체였다.김 법린은1931년3월일본동경에서조선불교청년동맹동경지부장 에선출되어항일운동을멈추지않았다. 1932년3월에귀국한김법린은그해7월만해한용운선생이 발간하고있던잡지『불교』의주간을맡아불교의대중화와 독립사상고취에힘썼다.그는이잡지에‘정교분립론’을발표하 여조선불교의자주권을부정하는일체의정치간섭을단호히배 격하고불교의독립을주장했다. 김법린은이후일제의감시와탄압이거세어지자가족을이끌 고최범술이주지로있던사천다솔사로피신했다.당시다솔사 에는한용운과김범부․김동리형제도와있었으며,비밀결사인 만당의본거지였다.그는다솔사에불교전문강원을개설하여학 생들에게민족의식을고취시켰다. 김법린은다솔사에서2년을보내고,해인사불교전문강원에서 1년반을강의한후,1936년1월범어사불교전문강원으로왔다. 1919년범어사의거를주도한후18년만에돌아왔던것이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