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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상) 306 그리고이유사끝에는수영야유(水營冶遊)라제호하고전편후편 나누어수록하기도했다. 수영야류 수영이나동래지방사람 들은탈놀음을<야류>,또 는<야루>라고부른다.이 것은원래<들놀음ㆍ들놀 이>라는우리말을한자로 <野遊>라고적었는데음 운변화로<야류>,<야루> 가된것으로본다. 그러나최한복이수영야류를정리하면서수영야유(水營冶遊)라 한것은<冶>자에깊은의미를부여한것같다. 만약최한복이수영야류를새로이정리하여수영땅에소개하 지않았다면오늘날수영에<수영>이란말이붙은<들놀음>은 없었을것이다.이수영야류는1971년2월26일에중요무형문화 재제43호로지정받게되었다.최한복은수영야류에대하여 水營遺史를쓰고本冶遊劇의傳來의意義를抱棄할수없고,或 後人의參考됨이있을까하여이에數頁(수페이지)를紹介한다. 本冶遊劇은若二百年前前後하여草溪田頭里로부터傳來하였으며 平民大衆이兩班의酷待를實質劇으로反影시켜諷刺한것이다. 조선조계층사회의반상계급은한말까지도이어져서수영지방 에도상하의계급의식이심했던것이다.최한복은이것을시정해 보려는한방편으로이극본을정리한것으로보인다.심지어는 일제가한때이야류를중단시키기까지했다.그것은‘조선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