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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기 291 게득도(得度)하고,은사의뜻에따라서울로올라가불교전수학 교(혜화전문학교의전신)에입학하여본격적인불교공부를시작 하였다.그곳에서조명기는박한영(朴漢永)․김포광(金包光)스님 의높은가르침을받았으며,당시외래강사였던민족선각자최 남선,정인보등의강의를들으며불교뿐만아니라민족의현실 과장래문제에도깊이사색한것으로보인다. 또한이무렵중국의북경을비롯한항주,남경,상해등지를 여행하며중국고대불교문화와그유적에대한깊은관심을갖 게되었으며,불교문화에대한안목도넓히게되었다.졸업후, 모교도서관사서로잠시근무했으나곧일본으로건너가동양대 학문학부불교학과에입학하여3년간수학하였다.불교의심오 한교학이론과사상에깊이빠진그의향학열은그곳에서이미 진가를발휘하여당시졸업논문이었던「원효연구」는그곳교 수들로부터극찬을받았으며,논문의일부는조선불교동경유학 생회에서간행하는『금강저金剛杵』제22호에발표되어국내 외에알려지게되었다.그리고이때시작된원효연구는훗날그 의평생에걸친대과업이되었다. 불교학연구와 후학교육 1937년,귀국후그는대학원격인경성제국대학법문학부종 교학연구실전공과에또입학하여불교사연구를계속하였고, 졸업후인1939년에는중앙불교전문학교강사로재직하며‘불교 개론’과‘불교사’를강의하기도하였으나,일제의부당한탄압으 로곧그만두고오직종교학연구실에서신라불교연구에만몰 두하였다. 1941년조명기는법문학부종교학연구실의교수직을받아본 격적으로불교학연구에전념하게되자,학자로서그의영역은 연구실의사료나이론에만매이지않았고,국내외사찰이나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