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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법린 27 벨기에브뤼셀에서개최된제1회 세계피압박민족반제국주의대회에 조선대표로참가한김법린의활 약상을보도한동아일보 1920년4월6일그운동의중심인물인신상완이서울에서체포 됨으로써일단락되었다.김법린은일제의감시와체포를피해 다시상해로왔다. 김법린은이후만주에서독립운동을계속할것인지,훗날을기 약하기위해공부를할것인지,심각하게진로를고민하던중남 경의금릉대학에입학하여학업의길로들어섰다.이무렵에그 는일제의체포와감시를피할목적으로이름을법윤(法允)에서 법린으로고쳐불렀다.그는대학에서영어와중국어를배우면서 미국유학을생각하였으나곧단념하였고,당시유능한중국청 년들을선발하여프랑스로유학을보내던국민당지도자왕조명 이주도한유법검학회(留法儉學會)의후원을받아프랑스로유학 을떠났다. 김법린은1920년10월프랑스마르세이유에도착하여청소부 를하면서불어를배웠고,파리의동포를규합하여한인친목회를 조직하기도하였다.1923년11월파리대학교(소르본대)철학과에 입학하여1926년7월3년만에졸업 하고,그해11월파리대학원에입학 하여근세철학을연구하였다. 이무렵김법린은불어를능숙하게 구사하였고,조국의독립을위해헌신 한투철한민족의식을가지고있었기 때문에1927년2월10일에벨기에 브뤼셀에서개최된세계피압박민족 대회의조선대표로참석할수있었 다.김법린은이극로(李克魯),이의경 (李儀景:일명이미륵),황우일(黃祐 日),신문기자허헌(許憲)등과함께 조선대표로참가하여,세계각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