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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86 인재양성을목적으로‘朝鮮神學院’을열었다.유명한목사들이출 강하였다.1939년9월말형사들이갑자기가택을수색하고약50 일간구금당하기도했다.조선인교인들간의갈등때문이기도했 지만,태평양전쟁기로들어가면서일제의황국신민화정책에위반 하는신학원의종교활동도제약을받을수밖에없었다.일본의 침략전쟁이더욱노골화되는1944년조선신학원교장직을사퇴 하고김해대동의산에서벌목일을하면서세월을보냈다. 해방후인구는그해11월미군정경상남도내무부학무과장 으로근무하게되었다.당시가장시급한문제는대학설립이었 다.대학설립기성회들이우후죽순으로생겼으나실질적인추진 력을보이지못하고있었다.이때인구는도립대학설립계획을 추진하였다.한편윤인구의부친윤상은은일본유학시절부터절 친한사이였던미군정청학무부장유억겸과의친분관계를이용 하여국립대학설립을추진하고있었다.부친의지원을받은윤 인구는국립대학설립을목표로부산의대학설립기성회의통합 을시도하였다. 윤인구는학교설립에필요한재원,시설,도서등을확보하는 데주력하였다.그런데가장중요한문제는교사(校舍)확보였다. 다양하게논의되던결론은부산수산전문학교를대학으로승격시 켜수산학부로,신설된학부를인문학부로하는국립부산종합대 학교설립안을1946년5월10일경상남도도지사명의로군정청 문교부장유억겸에게제출하였다.이설립안은5월15일자로한 미양문교부장의최종결재를얻어국립부산종합대학교설립 이확정되었다.설립안확정일자인5월15일은부산대학교의개 교기념일이다. 문교부는1946년8월베커(Becker)박사를총장으로임명하였으 나기존수산대학학생들의반발로학교는제대로운영되지못 했다.게다가교직원들간의알력과갈등이심각해져1947년베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