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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84 민족은행인구포은행의출발점인구포저축주식회사를세웠다.윤 상은은구포은행을통해독립자금을조달하는데도열성적이었다. 인구의형제는아래로연숙,연학,현표,학자,현성이있다.동 생연숙은울산의유력자김홍조의둘째아들택진과결혼하였다. 김홍조는한말경남일보를창간하고1919년사촌인현진과함께 상해임시정부로건너갔던인물로,울산과경남의근대사에서중 요한인물이다. 윤인구는한말관료․지식인,일제강점기초민족주의사고를 지닌집안분위기에서태어나자랐다.이런배경에서자란인구 또한민족주의의식이강했다.인구는구포구명학교에입학했다 가부산진공립보통학교로전학하였다.14세되던해서울제일고 등보통학교에입학하였으나병으로휴학하고구포로돌아왔다. 다음해인1917년동래고등보통학교에입학했다.3.1운동이일어 나만세운동이전국을뒤덮었을때인구또한중요한역할을하 였다.동래시장만세운동이일어난뒤학교선배인매형서진랭 (徐鎭冷)이인구에게독립선언서50통을주고구포에가서소식 을전하라고하였다.그는선언문을뿌리면서만덕고개를넘어 구포에이르렀다.당숙인윤정은에게자초지종을이야기하고선 언문을전달했다.몇일뒤구포에서도만세운동이일어났다.당 숙인윤정은과재종형경봉은검거되었고,당숙은옥중에서세상 을떠났다.인구는일본경찰의검색을피해다녔다.3.1운동후 학교의일본인교감이권총을차고다니면서공포분위기를조성 하자이를쫓아내기도했다. 동래고보를그만두고1920년1월초일본동경으로유학을떠 나예비학교를다녔다.4월부친윤상은이慶應大學에입학하자, 인구도名敎中學에편입했다가,기독교학교인明治學院중학부로 전학했다(1920년).계속해서고등학부문예과로진학하였다(1923 년).1926년인구는신학을공부하기로마음먹고,명치학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