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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78 가족사진1950년우장춘이한국에귀국하기직전에 찍은사진 아버지의행위와처신의잘잘못이드러나고있었다.그와함께 아들로서의처신을생각하지않을수없었다.그처신은아버지 가저질은일에대한속죄였다.머뭇거릴것도아니었다.조선인 의아버지에,일본인의어머니,그사이의어머니의고국인일본 에는공헌을다하다시피했다.이제는아버지의나라에공헌하는 일,그것이자식으로서해야할숙죄요,조국에바치는도리였다. 우박사는일본이패망하고조선이독립한다는8월15일에서 17일뒤인9월2일다끼이연구농장에사표를내었다.일본은패 전으로우왕좌왕의혼돈속에빠졌고,한국또한질서를잡지못 하고있었다.우박사는알음이있는한국인이광복맞아고국으로 돌아간다는사람에게는나도한국으로돌아가서농사일을도우 고싶다는말을잊지않았다.그당시는미군점령아래외지에 나가있던사람은한국인이나일본인은제나라로귀환하는귀환 선을타고오갈때였다.한․일간국교(國交)는이루어지지않고 있어도제각각의환국은미군정(美軍政)이주선을하고있었다. 다끼이연구농장에사표를낸우박사는교토(京都)근처의조오 호오지(長法寺)에서농장을경영하며아버지의나라한국으로갈 기회를찾고있었다.그 는한국으로가는인편으 로대한원예협회장김태 홍(金泰洪)에게한국으로 가서일하고싶다는편지 도보냈다. 환국 후 국내활동 그런데우박사가한국으로돌아가고싶다는의향을가졌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