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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76 니아를8겹의겹꽃을피우는종(種)의합성(合成)를이룬그위에 십자화과(十字花科)식물(무우․배추․양배추등)의게놈(GENOM) 분석에새로운경지를열어갔다.그것은유채(염색체수10)와양 배추(염색체수9)를교잡(交雜)하여지금의조선유채(염색체수19) 를인공적으로합성하는데성공한일이었다.그리고그것을토대 로조선유채(염색체수19)와배추(염색체수10)을교잡하여염색 체수29의배추의새품종을개발했다. 이러한실험결과를근거로한학위논문으로1936년5월4일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에서박사학위를받게되었다. 이논문이발표되자농학계뿐아니라자연과학계가발칵뒤 집어질정도가되었다.그것은그동안다윈의진화론을추종해 온학계에서생물의진화는다윈이말한생존경쟁에서온다는 사실에회의를가지면서자연계에있어서도종의합성이자연적 으로이루어져새로운종이생겨나면서진화를거듭해갔을수 도있다는견해였다. 그러나우장춘은그러한생물학중심의학자라기보다농학도 이자육종가(育種家)였다.농작물의새품종창조에만힘을기울 이고있었다. 시험장의딴동료들은기수(技手)에서기사(技師)로죄다승진 하였는데그는박사가되어서도16년전의기수였다.그때는우 리나라가일제에강점(强占)되어있을때였다.우장춘의이력서 본적은조선이었고그조선으로해서조선인이되어홀대를받 고있었다. 그런가운데1937년6월해외출장의명을받고2개월간중국 을다녀온뒤인8월25일농림성기사(技師)의사령장을그제야 받았다.그사령장과함께우장춘을중국에세워질면화시험장 (棉花試驗場)장장(場長)으로상신했다.그런데농림성에서상신한 우장춘을외무성에서조선사람을중국의면화시험장장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