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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60 “동양의옛성인들은오직심성의의리에힘을써서사람다운 사람을만들자는것이었기에,공리에대하여는숨기고드러내지 않았으나,현금서양사람들은물리의학문을끝까지궁구하여 영롱하고투철한성과가갈수록기묘하여국방이나백성의이익 을도모하는데민첩하면서도공교한바가있다” 고하면서,공자맹자의도덕을바탕으로삼고구미의기술을 응용하여국가의기틀을바로잡고국민의소망을이루는것이 학도의임무라고격려하였다. 추호는신학문을장려하는데있어서학문의귀천이나신분의 귀천을따지지않았다.부산에외국인의출입이빈번해지면서부 산에는외국에서들어온새로운의술을배우려는사람들이모여 들어의생조합을조직하였다.사람의질병을다스리고생명을건 강하게보전하려는의술은소중한학술의하나였지만,사대부양 반을중시하는조선조의사회기풍에는의원을상대적으로소홀 하게대접하였다.추호는 “사람이생긴이래로온갖기술자가기술과재능을발휘하는일 은모두이용후생을위한것인데,의사대우를유학자보다못하 게한것은잘못된풍습이라” 고하면서의생들의학업을적극권장하였다.또한여학교정 정의숙의건립되자여성교육의중요성을들어적극찬동하였다. 1905년을사조약이후일본의침략이노골화되면서,일본인들 은한국의사람들을회유하여친일단체를조직하고선동하였다. 부산에서는일본인오오가키[大垣]가그런일을주도하고있었 는데,추호는그에게서찰을보내어“병든이웃을도와주려고하 지않고도리어산채로삼키려고하는것은의롭지못한짓”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