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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58 하였다.추호는국가에서이미외국과의통상을허락하고우수한 외국문화를섭취해야할필요성이있는이상,외래문화를적극 수용하여이용할필요가있다고역설하였다. 현금경쟁시대를당하여,약한자를겸병하고어두운자를 공격하며,약한자를강한자가잡아먹고,배와차로온세계 를통행하는형편에,관문을닫고조약을끊고항구를폐쇄하 여지키는것보다는,시대에따라적절하게대처하고일에따 라대응함이옳다.그러나신학의이용후생이구학과가깝지 만,기교가지극히교묘하여사람들의이목을놀랍게하고하 늘의조화까지빼앗는것들은도리어이용후생에방해됨이있 으니,잘살펴서다듬지않아서는안된다. 병자년개항이후부산항을거점으로외국과의교류가활발하 게이루어지자,외국인과의교류를위하여외국어에능통한인재 를양성하는교육기관이필요하였다.외국문물을받아들이고교 류를확대하는가운데일체의제도가고쳐지는와중에,부산에서 는다른지역보다앞서신학문을가르치기위한학교가속속건 립되었다.1895년부산영주동에박기종이일본인들의협조를얻 어개설한일어학교인개성학교를시작으로,같은해에일신학교 가건립되었고,1898년에는동래부에서공립동래부학교를건립하 였다.이들학교에서는일본어를비롯한외국어와,물리화학지 리등의새로운교과목을채택하여가르쳤는데,이런내용은조 선의옛날서당에서는관심조차가지지않았던과목들이었다. 추호는이러한신학교의건립과교육에적극참여하였다.추호 는굳이구학문에구속되어신학문을배척할것도아니고,신학 문을따라구학문을버릴것도아니라는절충적인입장을취하 여신구병진을주장하였기때문에,신학문의교육이국가와사회